스크린에 담긴 이야기/최근 본 영화 감상

죽음의 땅을 지나 전달하는 생명의 메시지 - [1917]

제시안 2020. 3. 1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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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안에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0. 들어가는 글

 

 어린 시절,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종종 나누곤 했다. 일제시대 이야기며, 한국전쟁 이야기, 한국의 경제 발전기 때 고생하던 이야기 등등. 할머니는 각 시대별 살아있는 역사였고, 체험자였으며, 그때 경험과 일들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이야기꾼이었다. 책 속에서만 보고 알았던 내용들을 할머니는 생생한 체험으로 풀어주셨고, 그 이야기들은 어린 필자에게 더 큰 호기심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끔 해주셨다.

 

 할머니가 해주셨던 이야기 중에서 가끔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전쟁 때 이야기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집안의 어른들은 징병될까 두려워 산골에 숨고, 증조할머니와 할머니만이 집에 남아 지켰다고 한다. 때 되면 몰래 식사를 가지고 가서 어른들에게 주고 왔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은 중공군이 들이닥쳐서 밥을 해달라고 해서 밥을 먹이기도 했다 한다. 무섭지 않았냐고 묻는 내 말에 할머니는 무서웠다고,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해주셨다. 한국전쟁 당시 할머니는 만삭 임산부셨고, 징병으로 끌려가신 할아버지는 고성 고지전에서 휴전 협정 며칠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1950년의 이야기는 젊은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로 들린다. 그 짧다고 하면 짧은 전쟁의 시간동안 너무나 끔찍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동생은 국군으로 형은 인민군으로 싸우는 눈물겨운 이야기는 강제규 감독의 영화로 많은 국민들의 눈물을 적시지 않았는가. 샘 멘데스 감독이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구성한 영화 [1917]. 이 이야기는 서구권에서는 큰 충격을 안겨준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처럼 감독도 할아버지를 통해 들은 이야기로 멀지만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받은 그 비극적인 이야기의 슬픔을 담은 영화이다.

 

1.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 이미지 출처 : 구글

 

 유독 무모한 작전과 의미없는의미 없는 죽음이 많았던 전쟁, 1차 세계대전.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자국의 승리를 확신하며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서로 지원을 하였다.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던 전쟁은 고착화되기 시작했고, 의미 없는 소모전으로 얼룩지기 시작한다. 이런 전쟁터에서 주인공 스코필드는 블레이크와 함께 에린 무어 장군의 명령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독일군의 유인 작전에 말려든 맥켄지 중령의 부대에 공격 중단 명령서를 전달하라는 것. 수천 명의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스코필드가 무인지대를 지나서 명령서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독일군의 유인 작전에 휘말려 무모한 죽음을 막기 위함이고, 스코필드는 한 병사로서도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스코필드가 무인지대를 통과하던 중 스미스 대위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스미스 대위는 스코필드와 헤어지는 자리에서 전쟁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명령서의 내용을 알리라고 충고한다. 스코필드는 마침내 맥켄지 중령을 만나나 그는 스미스 대위의 말처럼 이미 하달한 공격 명령을 취소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에 스코필드가 명령서의 내용을 모두가 있는 가운데 말해주니까 그제야 공격 명령을 취소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이 의미 없는 전쟁을 어떻게든 빨리 이겨서 끝내고 싶었다 라고. 

 

 전쟁을 막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맥켄지 중령은 독일의 함정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공격 명령을 감수한 것을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그랬다는 말로 덮고 있다. 하지만 그 공격으로 죽게 되는 수많은 생명들을 생각한다면 그의 선택은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1차 세계대전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비아냥 섞인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유럽의 모든 남성들을 전쟁터 시체로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감독은 맥켄지의 말을 통해서 우리가 목적을 이루고자 할 때 놓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전하고 있다.

 

2. 무인지대

 

※ 이미지 출처 : 구글

 

 참호전으로 전투 양상이 바뀌면서 서로의 참호 사이에 있는 넓은 대지가 생겼다. 이 지역을 [무인지대]라고 불렀는데 각종 포탄이 떨어져 만든 웅덩이, 시체들, 그리고 철조망과 독가스에 오염된 땅, 연기 등등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전투 호각소리가 불리면 우리의 참호에서 뛰어나가 이 무인지대를 지나 적 참호에 도달해 전투를 진행했다. 그러나 각 참호에 설치된 기관총 진지는 강력한 화망을 구축했고, 이 기관총 세례를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관총 혹은 하늘에서 떨어진 포탄에 죽임을 당했다. 무인지대는 피아에 관계없이 죽은 자 들만이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 무인지대에도 살아가는 것들이 있다. 먼저는 쥐와 각종 벌레들이 있다. 시신을 먹으며 자라는 이것들은 전쟁의 비극에서 살찌우는 존재들이다. 참호를 지나 펼쳐진 대 평원에는 푸른 풀이 자라고, 그 풀을 뜯었던 소들이 있었다. 비록 독일군이 퇴각하면서 소들을 다 죽였지만 말이다.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과실을 맺을 준비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벌인 전쟁, 그러나 자연은 자신들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서 빗겨난 존재들도 있고, 전쟁에 붙어 이익을 보는 존재들도 있다. 혹은 전쟁에서 빗겨 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피난민들도 있다. 언제 독일군이 자신들을 덮칠지 모르는 공포에 하루하루를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무인지대를 관통하는 것이 주인공의 임무이다. 무인지대는 전쟁의 비극이 담겨있지만 동시에 그곳을 적과 아군이 없이 오직 생존만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이곳을 이겨내지 못하면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만다.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게 포위당한 스탈린그라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무인지대는 어쩌면 1차 세계대전과 오늘날 우리를 연결하는 공간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치열한 삶의 시간 속에 전쟁의 상흔을 이제는 잊고 지내는 우리에게 다시금 전쟁의 비극과 아픔을 전달하기 위해 누군가 전령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도달하는 생존의 메시지,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주제, 그것은 바로 생명의 소중함이 아닐까? 우리가 외면하고 망각하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많은 일들과 시간들. 감독은 그것들을 무인지대를 통해 표현하고 우리에게 간명한 주제의식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3.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untinuous Shot)

 

※ 이미지 출처 : 구글

 

 영화는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촬영기법으로도 유명해졌다. 롱테이크 장면들을 따로 촬영하고 어떤 매게체나 비슷한 소품들 등을 통해서 이어 붙여 편집한 연출이다. 8분의 ok를 위해 수십 번을 재촬영했을 때 우리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나 싶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생각에 만약 감독이 선택한 이 연출법이 아니었다면 [1917]은 명작 반열에 올라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촬영 기법을 통해 감독이 노린 다양한 효과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전동화의 효과가 가장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시작된 이야기가 끝이 날 때까지 계속 집중해서 듣고 또 듣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구전동화의 효과이다.

 

 구전동화 효과에서는 그 속에는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야기가 마치는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도록 긴장의 끈을 이어주는 장치들도 많이 있다. 특히 마지막 맥켄지 중령의 부대가 전쟁터에 투입되려고 하는 시점들은 전투 장면이 없는 이 영화에 전쟁의 비극을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끊기지 않는 장면을 통해서 주인공이 느끼는 심정과 관객이 느끼는 감정들을 동일하게 이어준다. 패닉에 빠진 소대장의 모습과 작전 명령을 전하는 중위의 모습, 그리고 돌격 명령에 잔뜩 긴장한 병사들의 모습 등등은 당시 전쟁터의 공포가 단지 병사들에게만 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긴장감과 절박함. 이 영화는 자칫 늘어질 수 있고, 기존 영화 담화와 비슷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하루라는 시간을 영화에 풀로 녹여냄으로 영상미와 연출에서 놀라운 효과들을 거둬들였다. 이는 주제와 잘 맞물리는데 아무 의미 없이 죽게 되는 사람들을 구해내야 한다는 것과 그 주어진 시간이 고작 하루라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죽음의 공간 무인지대를 거쳐가야 한다는 것들이 어우러져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감독은 물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주인공이 노력하는 모습에 대해 관객들은 깊은 몰입을 하게 되면서 감독이 전하는 주제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구전동화에서 마지막에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숨죽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4. 이승만이냐, 김일성이냐

 

※ 이미지 출처 : 구글

 

 한 TV 프로에서 황석영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가는 황석영 작가의 가족이 밤에 정찰대의 습격을 받게 된 내용이었다. 정찰대는 어느 편인지 알 수 없었고, 이들은 작가의 가족이 어느 소속인지 물어봤다고 한다. "너희들은 이승만 박사와 김일성 장군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라고. 이때 작가의 아버지는 재치 있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정치를 모르는 양민입니다.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할지 가르쳐 주십시오." 이 대답으로 작가의 가족은 모두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은 가장 거친 정치적 행위라고 한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도, 전쟁이 끝난 이유도, 그 후 처리 과정도 모두 정치적 입장과 관점에서만 이야기 된다. 어느 하나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역사책에서도 수십만 명의 병사들이 한 전투에서 소수의 병력에 몰살당하는 대전을 거론하며 이긴 쪽의 놀라운 지혜와 담대한 용기에 찬사를 보내지만, 학살당한 그 병사들에 대한 추모는 적혀있지 않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충격은 가히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어제까지 옆집에 살고 있던 아저씨, 아파트를 관리하시던 경비 아저씨, 과일 가게에서 맛난 과일을 추천해주던 주인아저씨, 명절에 만났던 고모부와 친척형 등등. 우리 주변에 살고 있던 이웃들과 우리의 가족들이 전부 1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달게 되었던 것이다. 이 충격을 유럽은 한동안 이겨내기 어려웠다고 한다.

 

 오늘날은 어떠한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1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현대,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정치논리와 담론 속에서 희생당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우리 서로의 생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고 있다. 결국 우리 모두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감독의 메시지는 다른 곳도 아니고 죽음과 비극만이 가득한 무인지대를 건너와야 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1917년 이후 오늘날까지의 현대사는 과연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들만 가득한가? 다시 이런 메시지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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