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담긴 이야기/최근 본 영화 감상

할리 퀸을 꿈꾸는 그대에게 - [버즈 오브 프레이]

제시안 2020. 2. 2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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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안에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0. 들어가는 글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직장도 그렇고, 학업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다.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것 없는 이 세상에 그나마 스크린 속 영웅들 혹은 게임 속 인물들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낄 따름이다. 새해가 되면 금연에 대한 소망도, 다이어트에 대한 소망도 품어보지만 작심삼일이란 말만 다시금 느끼게 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내 마음대로 무언가 하려고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이때,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다양한 족쇄를 마주하게 된다면... 작년 세상을 흔들었던 미투 사건을 통해서 아직까지도 세상에 천대받는 여성들이 많음을 만방에 드러냈다. 약하다는 이유로, 사회의 왜곡된 시선과 편견으로 이들은 각종 폭력에 노출되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것이 아니라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그 인권과 존엄은 가질 수 없었던 이 시대의 여성들.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만연한 성차별의 그늘 속에서 이들은 숨죽이고 있었고, 울고 있었던 것이다.

 

 마고 로비. 그녀는 할리 퀸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서서 이 영화 제작에 앞장섰다고 하는 이유. 그것은 흥행을 넘어서서 더 이상 섹스 심벌로만 소비되는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여성을 이야기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맹금류라는 이름답게 더 이상 새장 안에 갇혀 노래하는 꾀꼬리가 아닌 창공을 마음껏 날며 사냥을 하는 그런 여성이 되고픈 이들에게 선사하는 영화. 

 

 [버즈 오브 프레이]는 이 시대 여성들에게 전하는 영웅담이다.

 

1. 할리 퀸

 

※ 이미지 출처 : 구글

 

 [수어 사이드 스쿼드]에서 처음 등장한 마고 로비의 할리 퀸. 뭇 남성들의 마음에 흥분을 안겨준 그녀는 놀라울만큼 관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통 DC 유니버스를 본 사람들 중에선 그녀의 할리 퀸은 설정을 파괴한 면도 있다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든 아니든 마고 로비의 할리 퀸은 [수어 사이드 스쿼드]의 파괴적인 영화 스토리와 연출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도록 하는 흥행거리를 톡톡히 제공하였다.

 

 처참한 영화 실적에도 마고 로비는 다시금 할리 퀸의 옷을 입었다. 그녀의 모습에 워너 브라더스도 흥행 보증수표라 여겼는지 냉큼 투자를 하였다. 그래서 탄생한 영화가 바로 [버즈 오브 프레이]이다. 

 

 [버즈 오브 프레이]. 맹금류라는 이름과 다르게 할리 퀸은 못된 강아지처럼 나온다. 관종이고, 조커의 애인이란 타이틀로 먹고 살고 있으며, 민폐를 끼치는데 1등 공신인 사람이다. 그녀는 조커와 헤어진 후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이것저것 해 보았다. 뭐든 출중한 실력을 자랑하지만 [할리 퀸]이란 이름보다 [조커의 애인]으로 더 기억되는 그녀. 이에 할리 퀸은 자신의 과거를 벗어버리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영화 내내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라는 말. 이 말은 단지 할리 퀸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 캐릭터들에게 적용이 되는 말이었다. 누군가라고 말하는 이 누군가는 바로 [남성]. 남성의 종속물로써의 여성관을 영화 내내 자욱하게 깔고 가는 것이다. 어두운 고담 시티에서도 더 핍박받는 존재는 바로 남성의 종속물로써만 치부되는 여성들이었다. 할리 퀸은 그 정점에 서 있는 존재로 등장하게 된다.

 

2. 논리 vs 감성

 

※ 이미지 출처 : 구글

 

 영화는 굉장히 작은 개연성에 의지해서 흘러간다. 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할리 퀸의 독백과 그에 따른 이야기의 진행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시시때때로 과거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다시 현재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이는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전반적으로 흘러가는 내용은 아주 짧은 이벤트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와 각 인물들 간의 만남과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 등등이 들어가서 전체 듀레이션을 만족시키고 있는 구조이다.

 

 할리 퀸의 독백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이야기는 할리 퀸 개인의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다. 그리고 캐릭터의 특성상 정신없는 전개에 대해서도 설득력을 얻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할리 퀸의 시각으로 이 모든 이야기들을 살펴본다는 것. 즉 할리 퀸으로 대표할 수 있는 여성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본다는 점이란 뜻이다.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영웅 서사. 그 속에 담긴 영웅의 성장과 변화. 이것이 할리 퀸의 새로운 탄생을 이야기하는 영화에 담긴 내용이다. 전개가 다소 산만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소 산만한 것은 여성의 특성이 아니고, 할리 퀸이라는 캐릭터의 특성이다. 산만한 전개를 통해서 등장하는 각 캐릭터의 서사들을 이야기해주고 있지만 이 이야기의 특징은 다른 점에 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성공만을 위해 나아가는 목표 지향적인 모습이거나 상대를 해하고 자신의 이득만을 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탐욕스러운 모습이거나 이런 것들을 넘어서 이들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이들 특유의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이는 단지 여성적 특성이다, 남성적 특성이다를 넘어서서 지극히 당연한 사람의 마음이다. 이 영화에서는 이런 지극히 당연한 것을 강조하며 이 영웅담을 색다르게 보여주는데 이 갈등의 가운데에 선 것이 바로 카산드라 케인이다.

 

3. 아이

 

※ 이미지 출처 : 구글

 

 카산드라 케인은 영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소녀다. 소매치기를 잘하는 바람에 영화의 핵심 사건의 소재인 다이아몬드를 훔쳐 사건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된다. 이 아이로 인해서 각 캐릭터들은 사건의 중심에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대혈투를 벌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카산드라 케인은 메인 보스를 죽이는 놀라운 일을 해내는...

 

 아이에게 연민을 느끼고, 아이의 생명을 보호하고자 하고, 아이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려고 하는 모습들. 이 영화에서 두드러진 여성의 모습이다. 영화에서 남성과 여성은 아이에게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르고 상반된다. 아이의 배를 갈라서 다이아몬드를 얻으려는 메인 보스와 아이를 통해 선한 마음을 찾아가게 되는 할리 퀸의 모습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어린 생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 이 영화에서 특별히 두드러지는 여성성이라 할 수 있다. 

 

 마고 로비는 이 카산드라 케인을 통해서 여성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할리 퀸이 마지막으로 블랙 마스크와 대치할 때도 할리 퀸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한 발 남은 총알이 든 총으로 자욱한 안개가 가득하고 여러 동상들이 가득한 장소에서 케인을 찾기 위한 할리 퀸의 노력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그녀가 용기 내어 블랙 마스크와 싸우고 이런 위험한 장소로 가게 만드는 힘의 원동력은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아이를 통해 여성은 강해지고 어떤 어려운 상황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케인을 통해 블랙 카나리는 더 이상 블랙 마스크를 위해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위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르네 몬토야는 더 이상 서장과 싸우면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정의를 위해 총을 뽑게 되었다. 단지 할리 퀸만이 아니라 이 캐릭터들 역시 케인을 위한 마음이 변화의 계기로 가져오게 된 것이다.

 

4. 사람 이야기

 

 할리 퀸이 조커를 사랑하게 된 계기. 그녀가 조커를 위해 화학약물이 가득 담긴 통에 몸을 던질 수 있었던 이유. 그러나 마침내 조커의 연인에서 할리 퀸으로 다시 태어난 이유. 이 모든 이야기들이 [버즈 오브 프레이]에 담겨있다. 

 

 할리 퀸의 냉소적인 웃음으로 가득한 영화이지만 사실 면면을 보면 웃으면서 보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있다. 그 이야기들을 그대로 풀기보다 할리 퀸의 독백으로 풀어버린 것은 이 이야기들에 집중하기보다는 한 여성이 한 사람으로 다시금 성장하는 계기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 한다.

 

 사실 영화는 굉장히 엉성한 면이 있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여럿 있고, 어설픈 액션씬과 마지막 메인 빌런의 황당한 죽음 등등. 이 모든 것들을 단지 할리 퀸의 독백이기 때문에 넘어갑시다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값진 이유는 사람의 이야기로 할리 퀸을 비췄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람의 이야기. 이 시대 여성들도 같은 사람으로 성적인 시선이나 사회적 편견과 관념을 통한 것이 아닌 그저 그 모습 그대로 사람으로 대우받기를 원하며... 

 

 맹금류가 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어서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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