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담긴 이야기/최근 본 영화 감상

이룰 수 없었던 젊은 날의 사랑 - [라라랜드]

제시안 2020. 3. 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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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안에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0. 들어가는 글

 

 우리는 참 어렸었다. 서로 처음 만난 사람이었고, 그래서 서툰 것들도 많았다.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던 환상 같은 연애담이 있었고, 나와 당신이 만들 연애담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그렇지만 어렸기에 서툴고, 가난하고, 열정만 가득했다. 시간이 흘러 사회에 진출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젊은 시절 함께 걷고, 함께 나누던 것들은 사라지고 이제 홀로 가야 하는 시간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첫 사랑, 혹은 어린 시절의 사랑에 대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아쉬움 혹은 아련함과 미련이 있지 않을까?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렸거나 혹은 사회에 찌들어 당시에 가지고 있었던 치기따위 없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막연한 희망과 불안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던 우리. 그 꿈같은 시간을 그린 영화, 바로 [라라 랜드]이다.

 

 감미로운 재즈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두 남녀의 젊은 날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 누군가는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는 이야기이거나, 누군가는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이야기이거나, 누군가는 지금 그 사랑이 내게선 해피엔딩으로 펼쳐지길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음악처럼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이든 우리는 상상하고, 보고, 느끼고, 오늘의 사랑을 풀어간다. 항상 젊을 순 없지만, 그 젊은 시절 경험을 통해 얻은 사랑의 비법으로 다가가고, 대화하고, 기다려주고,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풀어준다. 아픈 만큼 아름다운 날의 기억, 누구의 말처럼 손끝만 물들어도 아픈 계절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 재즈

 

※ 이미지 출처 : 구글

 

 영화에서 재즈는 이제는 유행이 뒤떨어진 음악 장르로 등장한다. 실제로 재즈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긴 하다. 그렇지만 세바스찬에게 재즈는 모든 것이다. 그는 재즈를 열렬히 사랑하고 단지 사람들이 찾는 레스토랑에서 입맛을 돋게 해주는 음악으로 소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지만 진정한 재즈의 매력, 이것을 세바스찬은 알고 있었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겨우 레스토랑 연주를 전전하고 있는 중이다. 자존심도 있고, 그의 생각과 그가 마주한 현실은 너무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었던 꿈은 더 세상과 큰 차이를 두고 있다. 누군가는 비웃고, 누군가는 이루어질 수 있는지 물어본다. 그렇지만 한 사람은 그의 이런 꿈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믿어준다. 그리고 응원해준다. 미아가 있어 세바스찬은 자신이 마주한 현실을 다시 진지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재즈는 미아와 세바스찬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다. 미아는 세바스찬을 통해 재즈를 접하고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 매력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세바스찬은 자신을 응원해주고 사랑해주고 믿는 미아를 위해서 어떤 재즈라도 감당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누군가 보기에 초라하고, 이제는 봐주지 않는 것에 불과한 재즈이지만 이 재즈를 통해서 미아도 세바스찬도 완벽해질 수 있다. 이들은 마치 재즈처럼 세상에서 초라하고 봐주지 않고 퇴색한 것 같은 존재였지만 처음에는 세바스찬이 그다음에는 미아가 이 재즈에 빠짐으로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지막 엔딩에서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전하는 재즈는 그래서 영화를 클라이맥스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2. 마주 보기

 

※ 이미지 출처 : 구글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를 만나 의지할 수 있음에 행복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반드시 바라봐야 하는 것들, 즉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 절차를 상대를 통해서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세바스찬은 절대 자신의 음악 세계를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다. 식당에서도 사정해서 앉은 피아노에서 결국 주인이 원하는 곡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곡을 연주하고 만다. 이 곡을 듣고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반하게 되지만, 그는 직장을 잃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세바스찬도 미아를 위해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현실과 타협을 한다. 그토록 싫어하는 친구와 함께 밴드를 하게 되고, 그토록 싫어하는 퇴색해버린 재즈 연주에도 적극적이게 된다. 

 

 현실에 다가가는 법을 배우는 세바스찬과 달리 미아는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모든 관심이 성공한 배우들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집중되어 있었던 미아. 그녀에게 세바스찬은 자신에게 집중해서 모노드라마의 극을 해보라고 권한다. 세바스찬의 권유와 칭찬, 그리고 도움에 힘입어 미아는 오직 자신만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고 그것을 소규모의 사람들이지만 관객들에게 펼쳐 보이게 된다.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와 모습, 그토록 보지 못하고 감추고 싶었지만 이제는 보여줄 수 있었던 진짜 미아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은 실망하고 떠나간다. 박수도 남지 않은 그곳에 심지어 세바스찬도 존재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자신의 밑바닥을 본 미아는 세바스찬이 다시 불러내서 오디션을 보기 전까지 자기의 굴에 갇혀 지내게 된다.

 

 영화 마지막에 미아는 성공한 배우가 되어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세바스찬은 자신이 원하는 재즈바를 인수해 사장이 되어 미아가 지어준 이름을 내걸고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토록 원하던 자신만 알고 있는 재즈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큰 환호와 관심을 받으며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미아는 끌리듯 이 재즈바에 들어갔고, 거기서 세바스찬을 보게 된다. 세바스찬도 미아를 발견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연주에 집중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음으로 서로가 원하는 성공을 이루어냈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그런 상대를 바라봄으로 지나온 시간과 지나간 사랑, 그리고 이제는 다가갈 수 없는 서로의 자리를 냉정하게 살핀다. 연주를 다 듣고 조용히 떠나는 미아도,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재즈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전하고 미아를 담담하게 위로하며 보내는 세바스찬도 참 멋지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는 꼭 한 번 만나야 했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처럼 말이다.

 

3. 홀로 서기

 

※ 이미지 출처 : 구글

 

 젊은 시절의 사랑은 무엇일까. 세상에 덩그러니 던져진 청춘들에게 누군가 든든한 지지자를 하나 얻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세바스찬도 미아도 자신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넘을 수 없게만 보이는 벽들을 넘어야 하는 힘겨운 곳으로 비춰진다. 세바스찬은 결국 어린이 생일 파티에서 연주하는 밴드에 들어가서 공연하는 처지가 되었고, 미아는 제대로 오디션을 보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번번이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둘이 서로에게 끌리는 것은 서로의 궁핍함과 서로의 야생성이 비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무것도 없고 지금은 비록 비굴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뭐라 한 소리를 하고 싶은 서로의 당당한 모습에 끌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세바스찬은 자신이 원하는 가게를 차리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고, 미아는 연기자로 대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밑바닥을 봐야 했다. 그렇지만 이는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아의 밑바닥을 보는 자리에 세바스찬이 있었다면 미아는 과연 마지막 엔딩에 세바스찬을 만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세바스찬이 만약 마지막까지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만 지키고 있었다면 원하는 가게를 열 수 있는 자금을 모았을까? 그렇지 않다.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에 적절한 타협을 해 나가야 하는 것들. 그러나 이는 함께가 아니라 홀로 서고자 하는 그 순간에 이루어진다. 

 

 성공을 이루고 나서 이들이 만났을 때, 미아도 세바스찬도 그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후회였을까, 연민이었을까? 지난 시간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일까? 아니다.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들과 이제는 서로의 처지 속에서 늦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다. 홀로서기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시간을 거치고 난 뒤에 본 서로는 추억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젊은 시절의 추억에 의지해서 사랑한다 말하기에는 미아도, 세바스찬도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

 

4. 가난해서 더 슬픈 그때의 기억들

 

※ 이미지 출처 : 구글

 

 [라라 랜드]를 통해 잊었던 사랑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서툴렀고,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아쉬움이 가득 남아있는 그 인연 말이다. 어느 날 대학시절 가르쳐주신 은사님을 찾아뵙게 되었을 때 물어봤다. 왜 그때는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은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는 다 그렇더라고. 힘들고 아프고 그렇기 때문에 더 격렬하고 그래서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그 시절의 사랑. 그러나 영화에서는 해피 엔딩을 무리하게 선택하지 않음으로 우리에게 더 큰 아쉬움과 감동을 전해준다. 

 

 [라라 랜드]는 젊은 날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감독의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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