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 안에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들어가는 글
쿠팡이 OTT 사업에도 확장하면서 한국 영상 문화를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넷플릭스 독주 체제에서 웨이브랑 티빙이 고전하고 있고, 왓챠는 이미 호흡기 단 상황에 쿠팡이 유통은 물론 막장 한국 OTT 시장도 접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덕분에 한국 영상계는 고도의 인플레이션이 해결되지 않고 더 많은 돈이 투자되어 더 큰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다... 어디든 돈이 막 풀린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쿠팡도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열을 올리던 중 한국 콘텐츠 진흥원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웰메이드 드라마가 등장했다. 바로 [소년시대]. [미생]에서 장그래로 얼굴을 알린 임시완이 찌질한 충청도 고2로 변신해서 돌아왔다. 이미 작년에 만들어진 드라마라 지금은 좀 시들하지만 임시완과 이선빈의 케미는 정말 사기적이라서 보는 내내 즐거웠다. 임시완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라서 보는 내내 그의 신들린 연기에 감탄하며 보게 되었다.
총 10화로 제작된 이 드라마를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저 학원물에 불과하다고 여겨진 이 작품, 충청도를 배경으로 코믹하게 어우러진 장면들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여러 생각할 수 있는 지점들을 제공해 줬다. 그 생각들을 정리하며 간단하게 이 작품에 대해 리뷰해보고자 한다.
1. 겉으로 보기엔 학원물. 그러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고등학교 2학년인 장병태. 그저 양아치들에게 얻어맞고 삥이나 뜯기는 평범한 학생이다. 그런 그가 부여로 이사를 가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이곳에 "아산 백호"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정경태가 전학을 온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이름도 비슷하고 전학 온 시기도 비슷하여 장병태가 "아산 백호"로 오해받은 것이다. 학교 양아치들은 장병태를 의심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오해는 더 커지게 된다. 그러던 중 정경태 역시 전학을 오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향한다.
총 10부작으로 제작된 쿠팡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시대]는 전형적인 학원물이다. 주인공은 물론 사건의 장소, 갈등의 주체들 모든 것들이 학원물의 요소와 절묘하게 맞물려 있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우리는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주인공 가족, 그리고 친구들은 모두 힘 없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그저 약하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고, 삥이나 뜯기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 모습은 마치 나를 보는 것 같고, 우리 사회 대다수의 소시민들을 보는 것 같다. 그저 태어나기를 평범하게 태어나고 약하게 태어났을 뿐인데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너무 가혹하다. 힘 있는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의 논리 속에서 이렇게 줘 터지고, 저렇게 돈이나 뜯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장병태가 하는 대사들을 들으면 마음이 찡해진다. 그런 그를 일깨우려는 절친이자 흑거미 박지영의 외침도 마음에 크게 와닿는다. 대체 왜 그렇게 살아가느냐는 질문.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도전해야 하지 않겠냐는 일갈은 이 드라마를 만든 작가가, 감독이, PD가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장병태를 응원하게 되고, 웃픈 상황들 속에서 다소 불편한 마음으로 드라마에 몰입해서 보게 된다.
2. 전형적인 영웅서사. 그래서 더 재밌다!
찌질한 찐따 장병태의 영웅담이나 다를 바 없는 [소년시대]. 이 드라마는 영웅서사의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평범한 소년이었던 장병태는 우연한 계기로 일진들의 눈에 띄게 되고 이들을 이끄는 리더가 된다. 그런데 진짜 "아산 백호"가 등장하면서 실체가 폭로되고, 나락에 빠지게 된다. 그동안 누렸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최악의 상황에 놓여 "아산 백호"의 시다바리가 된 장병태. "아산 백호"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장병태의 아버지까지 피해를 입히는데 이에 장병태는 각성하게 된다. 복수를 다짐하고 수련을 거듭한 결과 일진들을 한 사람씩 처리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아산 백호"와 결전을 벌이게 된다.
평범한 소년이 우여곡절 끝에 영웅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언제 봐도 즐겁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정립된 포멧이 10부작 드라마에 그대로 적용되었고, 소재만 달라졌을 뿐이지만 익숙한 맛, MSG가 잔뜩 가미된 프랜차이즈 맛에 중독되어 금방 드라마에 빠져들고 끝까지 보게 된다. 어떤 면에선 그게 뭐 대단하냐 싶겠지만, 사실 정립된 서사구조를 가지고도 이야기를 잘 못 짜고 재미없게 만들어서 대중들의 눈에도 들지 못하는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 이 작품은 연출과 편집,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까지 잘 짜인 명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처음 말한 것처럼 이미 장병태라는 캐릭터에 이입이 된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이 이야기는 끝까지 봐야 하는 이야기가 된다. 사실 세상에는 대기업을 다니는 직장인보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직장인이 더 많고, 삥을 뜯어본 친구들보다 뜯겨본 친구들이 더 많다. 그런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감정을 한 캐릭터가 품고 호소하고 있으니, 이 드라마는 이미 그 자체로 성공적인 루트를 탄 것이나 다름 없다. 여기에 임시환, 이선빈의 명품 연기가 더해져서 보는 맛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최고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을 보면 웃고 울고 심각해지고 마음이 찡해지다가 뭔가 씁쓸하면서도 통쾌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3. 결국 주먹으로 해결했어야 할 일인가?
다만 좀 아쉬운 것은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좀 아쉽다. 이 드라마는 결국 찌질한 찐따였던 한 학생이 각성하여 주먹으로 일진들을 모조리 격파하고 최고의 주먹이 된다는 스토리다. 만약 이 드라마가 오직 주먹에 대한 이야기로 집중되어 주먹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면 크게 아쉬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마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태권도 사범이라는 것은 영화 전반에 걸쳐 큰 설득력을 주는 장치라고 본다. 이것이 있어서 주인공이 점차 갈등을 완화하지 못하고 극대화되는 순간 결국 주먹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이 설명이 된다. 그래서 큰 거부감 없이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년시대] 주인공 장병태는 그렇지 않다. 영화와 드라마의 호흡이 달라서 그런지 몰라도 장병태는 꼭 주먹이 아니라도 모든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키들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키들을 쥐고 있는데 다 던져버리고 오직 주먹으로 승부를 본다? 다소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도 들고, "학원물은 이래야 한다"라는 느낌으로 제작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장병태는 중간에 공고와 시비가 붙었을 때 2학년들을 통솔하여 공고로 쳐들어가 큰 승리를 거둔 적이 있다. 이것은 단지 농고 일진들이 가자고 독려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장병태가 그런 안을 제출하고 사람들을 모으자고 한 것 역시 영향을 미친 것이라 본다. 그리고 일진들을 통솔하는 능력도 괜찮았다. 그래서 만약 찐따들을 통솔하여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연한 기회로 장병태는 학생회장으로 당선된다. 그렇다면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것을 기회 삼아 자신의 상황을 바꿀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내용들은 나오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 거기에 "아산 백호"와의 갈등으로 선생님들에게 주목을 받는 사건도 생겼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자신의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장병태의 심리적인 상황들을 보면 이런 이야기들은 그저 꿈에 불과하다. 사람은 자신의 심리적 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흘러가고 저렇게도 흘러가고, 좋은 기회가 와도 놓치는 경우가 빈번하고 그러니 말이다. 그런 것을 고려하면 현재 스토리라인이 좋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자신의 상황들을 바꿀 수 있는 여러 기회들을 너무 일방적으로 한 방향으로 고정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4. 마무리
학교는 한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전부 본 것 같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고 하는데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우리는 어떤 폭력과 어떤 불합리를 가르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정의롭고 공정하고 약자를 위하는 세상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일까?
[소년시대]에서 병태가 외치는 것처럼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이 더 많다. 다만 그 사람들을 위해야 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의 논리가 더 잘 먹힐 뿐.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는 약자를 그저 수탈하고 학대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나와 씁쓸하게 보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에서라도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지고, 약자를 위하는 사회로 변모하길 바라는 제작진의 마음을 엿본 것 같아 기뻤다. 이런 드라마들이 계속 만들어지면 조금이라도 약자를 위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막장 드라마가 우리나라 출산율을 저조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상상을 좀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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