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담긴 이야기/최근 본 영화 감상

[#리뷰] 피끓는 청춘 - 코믹하지만 잘 풀어낸 청춘서사

제시안 2024. 7. 1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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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안에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들어가는 글

 

여기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청춘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구수한 사투리는 물론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80년대 감성이 충만한 화면들. 비록 배경과 시간은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다소 낯선 것들이 가득하지만 이상하게 이 영화는 편안하다. 이야기 속에선 옷만 다르게 입고, 말만 사투리를 할 뿐 한참 사랑에 울고 웃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2014년 개봉한 영화 [피끓는 청춘]은 말 그대로 청춘 남녀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담아낸 영화다. 영화 속에서는 특별한 철학적 이야기나, 영화적 기술력이 대단하거나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인상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다소 아쉽게 긴 흥행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나는 이유에 대해서 정리해 봤다.

 

 

1. 80년대 배경으로 펼쳐지는 청춘서사

 

기차로 통학하는 모습까지 담겼다.

 

80년대 학창 시절은 필자와 관련이 없다. 80년대에 태어났기에 오히려 삼촌들의 이야기가 더 맞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흑백 TV로 보고 아빠 엄마에게 듣던 그 시절 이야기가 스크린에 펼쳐지니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을 준다. 교련복을 입고 농고와 공고가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들. 그리고 연애를 한다며 빵집을 가거나 중국집에서 짜장면 시키고 데이트하는 모습들까지. 지금은 촌스러워 보이고 진짠가 싶은 모습들이 있지만 그런들 어떠랴. 한국적 서사가 완벽하게 녹아져 있는 모습들을 보면 그 익숙함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해서 사건의 시초가 되는 것들은 모두 이 시점에 묶여 있다. 중동에 가서 돈을 벌고 온 아버지, 서울대에 입학하자 현수막을 동네 입구에 걸고 마을 잔치를 벌이는 것 하며. 학교를 때려치고 서울 올라가 공장에 취직하는 것까지. 모든 것들이 시대상에 맞게 잘 짜여져 있다. 그래서 이때를 살아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모습들이 가득하다. 그런 것들이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는 내용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학교에 있는 모든 여학생들을 꼬시는 것으로 유명한 주인공 강중길. 잘생긴 얼굴 하며 여자 마음을 사로잡는 멘트와 행동거지는 뭇 여성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런 그도 딱 한 여자 박영숙은 꼬시지도 않고 접근하지도 않는다. 이미 주먹으로 여자들의 세계를 평정한 그녀지만 어떻게 해서든 강중길의 마음에 들려 노력하지만 그럴 수 없다. 그러던 중 새로 전학 온 최소희. 그녀는 여리여리한 모습과 미모로 전교생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이런 그녀를 강중길이 가만두지 않는다. 어떻게든 꼬셔보려고 하지만 쉽사리 넘어오지 않고, 최소희에게 마음을 쏟는 강중길의 모습에 박영숙은 신경이 쓰인다. 그러던 중 최소희가 떨어뜨린 지갑에서 담배를 본 박영숙. 최소희는 그런 영숙과 단판을 뜨고자 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도 한 주먹 하던 성격이었던 것. 하지만 그녀와 한따까리 하던 영숙은 모든 오해를 뒤집어쓰고 학교마저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강중길은 영숙의 사정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동안 자신이 했던 오해도 풀어지면서 영숙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학교를 졸업한 중길은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에서 공장을 다니는 영숙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마치게 된다.

 

영화 전체의 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해서 보면 오늘날 청춘서사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시대를 넘어서 청춘남녀의 사랑과 갈등을 그린 이야기는 배경이 어떻든, 시간이 어떻든 큰 상관없이 공감을 산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만큼 비극적이지 않지만 이 서사 속에선 단지 청춘남녀의 사랑과 갈등뿐만 아니라 성장과 당시 어쩔 수 없었던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우리네 인생까지 녹이면서 깊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2. 강한 여성과 여리여리한 남성이라는 색다른 시선

 

강한 여자 박영숙. 이후 [힘쎈 여자 도봉순]이 되는...

 

이 영화는 그저 웃긴 청춘 로맨스물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는 묘하게 비틀린 시선과 현대적으로 재각색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것은 바로 강한 여성과 여린 남성이라는 시선이다. 

 

보통 로맨스물에서 여성은 구해줘야 하는 존재, 사랑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 강한 자를 선택하는 존재로만 그려진다. 게임에서는 모든 던전을 극복하고 얻을 수 있는 보물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 여성들을 본다면 이런 시선과 서사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당시에도 그렇고 오늘날에도 사실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화가 되어가며 육체적 성이 사회적 역할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신분과 역할이 정해지고 있다. 80년대는 이런 모습들이 점점 드러나고 있던 때였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오늘날의 시선에서 80년대의 문화와 시선을 강요한다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런 시선을 살짝 뒤틀었다. 박영숙은 주먹질도 잘 하지만 의리나 성격도 남자 못지않게 무뚝뚝하고 진중하다. 강중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에게 신발을 선물한 박영숙. 강중길은 영숙이 신발을 선물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간다. 그리고 왜 선물을 주냐 따지니 영숙은 마음에 안 들면 놓고 가라고 한다. 그러나 중길은 신발을 자기 품에 꼭 안고서 이번만 받는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이전에 다소 불량한 남성이 예쁘고 깍쟁이 같은 여성에게 하던 행동과 어투가 성별이 달라진 채 나오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영숙과 어울리며 짱을 먹고 있던 광석은 여러 일들로 중길과 계속 갈등을 겪게 된다. 영숙은 학교를 그만두고 중길에게 복수하려는 광석을 말리려고 자신을 희생하게 된다. 나중에 중길이 이런 소식을 알게 되고 각성하게 되지만, 여하튼 영숙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은 아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마지막에는 결국 중길이 영숙을 만나러 가는 모습은 기존 서사와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이 정도는 용서해 줄 법 하지 않을까?

 

 

3. 다소 빈틈이 보이지만 용서할 수 있는 이유

 

두 선생의 서사도 크게 나올 필요는 없지 않았나 싶다.

 

줄거리에서 설명하지 않았지만 영화 내에는 여러 갈등요소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아버지와의 갈등이다. 이것은 서사 이전에 있는 배경서사에 있던 갈등으로 중길의 성격과 모든 행동의 원인이 되는 갈등이다. 초등학교 다니던 중길은 얼굴도 모르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는 중동에 일하러 가서 중길이 태어난 후 귀국해서 만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자신의 엄마가 바람이 나서 도망갔는데 아버지를 만나는 순간까지 중길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등장한 것도 놀라운데 엄마까지 없어지다니. 중길은 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엄마가 도망갔다고 믿게 된다.

 

이런 오해 속에서 중길은 자기 운명을 체념하고 온 여자들을 꼬시며 지내게 된 것이다. 형이 집에 와서 동네잔치도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사실. 그런데 문제는 영화 말미에 자신이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생긴다. 영화 초반부 동네 잔치 때까지 등장했던 형이 영화 말미에 등장해서 오해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게 좀 아쉽다. 

 

사실 영화에서 형이 나와 중길과 이야기하고 에피소드를 만들 여력들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줄곧 달리기 하는 소녀가 등장해서 이야기에 뜬금없는 개그 포인트를 넣는 정성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형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본다. 거기에 형은 목소리만 나오는데... 모든 복선을 한 번에 해결해 줄 내용을 던지는 중요한 키맨임에도 이렇게 나와버리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말미에 영화의 모든 사건을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좀 아쉽다 정도로 그치는 이유가 중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에 굉장히 초점을 잘 맞췄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소 불필요한 설명일 수 있는 내용들이 좀 있었고, 광석과의 갈등 역시 좀 질질 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렇지만 차곡차곡 쌓은 인물의 서사들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만약 이런 서사가 싫지 않다면 푸근한 아버지의 시선으로 기다려주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시절에 대한 추억에 빠져보는 것도 덤이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 아쉬운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4. 마무리

 

성장하는 캐릭터 강중길.

 

코미디 영화는 그저 웃기기만 해도 잘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속에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 그리고 해학이 담겨있다면 좋겠지만 이게 지나쳐서 웃기다가 나중엔 눈물을 짜내는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웃으려고 들어갔다가 울게 되어 뭔가 찜찜함이 남는 경우들이 있어 잘 보지 않게 되었는데 이 영화는 다르다. 우리가 이미 지나왔던 그 시절의 감성을 들춰보고 그때 우리들의 뜨거웠던 사랑 이야기에 다시 푹 빠지게 된다. 사랑이란 단어에 아프기도 하고 고민도 하고 설레기도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 시간이 된다면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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