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 안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들어가는 글
그라운드에서 9명의 선수가 펼치는 승부의 세계, 야구! 마운드에서 9명의 타자들을 자신이 가진 구속과 구질 하나로 승부하는 투수와 어떻게든 투수의 공을 공략해 쳐서 출루하고 득점하려는 타자. 이들의 숨 막히는 승부가 펼쳐지는 이 스포츠가 예능으로 만들어졌다.
각 프로팀에서 레전드로 명성을 쌓은 선수들. 그들은 은퇴를 하고 야구를 하고 싶어할까? 치열한 승부의 삶 속에서 살아왔던 이들을 모아 [최강 몬스터즈]를 만들었다. [최강 몬스터즈]의 목표는 하나. 시즌 승률 7할이다. 만약 시즌 승률 7할을 달성하지 못하면, 프로그램은 폐지된다. 그리고 10게임마다 승률이 7할이 되지 못한다면? 성적이 낮은 선수가 한 명 방출된다.
예능이라기에는 진지하고 살벌한 목표를 향해서 전직 레전드 선수들이 아마추어 야구단과 승부를 벌이는 프로그램. 이들은 과연 시즌 승률 7할을 달성할 수 있을까?
1. 스포츠 예능? 스포츠 다큐? 그 경계에서
현재 방송가에서는 비용과의 전쟁이 선포된 상황이다. 넷플릭스의 진출로 드라마 제작 비용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물론, 퀄리티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도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넷플릭스를 통해 치러지고 있는 쩐의 전쟁은 총만 들지 않았지 실제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럴 때 종편에서는 색다른 프로그램들을 선보이고 있다. 은퇴한 선수들을 모아서 함께 무언가를 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연예계 종사자보다 상대적으로 몸값이 싼 은퇴 선수들이니 A급 연기자 한 명 섭외할 돈으로 이들은 10명이고 20명이고 충분히 모으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시작한 프로그램이 기억에 [뭉쳐야 찬다]. 국가대표 금메달리스트들을 모아 안정환을 중심으로 축구팀을 결성하고,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아마추어 팀들과 대결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크게 흥행해서 현재는 [뭉쳐야 찬다 시즌 3]까지 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야구에서도 여러 예능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최강야구]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종종 TV에서 재방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예능식 편집과 구성으로 스포츠 경기가 방영되고 있었다. 기존 스포츠 경기와 달리 더 디테일하고 촘촘한 것들도 볼 수 있게 해준 것이 특징인데 대표적으로 불펜에서 선수들이 이야기하는 것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각 선수들마다 마이크가 장착되어 있어서 경기 중에도 선수들이 하는 말이 다 전해졌다. 이런 생생함은 기존 스포츠 경기와 완전히 궤적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기존 스포츠 경기를 보게 되면 선수가 경기에 집중하고 승부하는 모습만 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이 어떤 심리적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지금 판을 읽고 있는지, 이들이 왜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를 했는지에 대한 설명들과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관객, 시청자와 선수들이 경기에 대해 느낀 감각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이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선수들의 심리가 그들의 입을 통해서 생생히 전달된다. 그러다보니 시청자들은 그저 경기가 이루어지고 있구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세에서 밀리고 있다거나 분위기 반전을 위해 선수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경기만 아니라 경기 외적인 요소들이 더해짐으로써 승부에 더 집중하게 되고,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런 요소 때문인지, 아니면 과도하게 진행을 하려 하거나 웃기려 하는 구성들이 없어서 그런지 분명 예능적 요소들이 있음에도 프로그램은 점점 다큐의 느낌을 받게 된다. 경기 외적인 이야기는 굉장히 짧고, 프로그램 대부분의 내용들이 야구 경기로만 채워졌는데도 말이다. 이게 참 신기하다.
그래서인지 이 프로그램은 예능과 비교하면 가볍지 않고, 다큐와 비교하면 가볍다. 그래서일까? 재밌다. 프로그램에 더 몰입하게 되고, 이미 지나가서 그 승부 기록을 다 찾아보면 다 나옴에도 불구하고 꼭 내 눈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팀이 지고 있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게 되고, 이기고 있으면 또 반전이 일어나지 않을지 염려하며 계속 보게 된다. 이런 보게하는 힘이 이 프로그램에는 가득하다. 아마도 예능과 다큐 그 사이에 위치한 것이 최고의 한 수가 되지 않았나 싶다.
2. 이겨야 즐겁다, 이겨야 한다.
[최강 몬스터즈]는 [최강야구]가 만든 야구팀 이름이다. 이 팀은 은퇴한 레전드 선수들이 모여있다. 아마추어 선수들도 소수 영입해서 신구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팀이 가지고 있는 패널티가 두 가지 있다. 그 두 가지는 모두 한 가지 결론을 가져온다. "이겨야 한다"
프로야구계에서 한 획을 그은 레전드 선수들. 몇몇 선수들은 야구를 모르는 사람도 이름만 들어도 아는 선수이다. 대표적으로 이승엽, 이대호, 박용택 등이다. 프로야구계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은퇴를 했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실력과 야구에 대한 열정은 프로야구 선수들에 못지 않다. 오히려 그들이 본받을 정도로 더 뛰어난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들이 상대하는 팀은 프로야구팀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강 몬스터즈]의 주요 상대는 아마추어 야구팀들. 고등학교, 대학교, 독립리그 야구팀, 프로야구 2군 선수들이 대상이다. 아무리 은퇴를 했다고 하더라도 프로야구계에서 큰 족적을 남긴 선수들에게는 이런 팀들과 승부해서 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그 실력에 걸맞는 시청자들의 기대가 있으며, 상대 선수가 느끼는 부담감이 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선수는 사람이다 보니 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아마추어 팀에게 기세가 압도되어, 생각지도 못한 실력에 압도되어 지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게 되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시즌 승률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선수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멘탈적 데미지를 받게 된다. 나중엔 경기에 지면 클로징도 하지 않고 마무리 되기까지 한다. 그만큼 분위기가 좋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결국 이겨야 한다는 것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작진이나 선수들이나 간절히 염원하는 목적이 된다. 프로그램의 폐지를 막기 위해서도, 선수들 개개인의 자존심을 위해서도, 팀 전체의 분위기를 위해서도 말이다. 그렇지만 승부가 쉽지 않다. 아마추어 팀들도 은퇴한 선수들과의 대결이기 때문에 현역 선수들의 자존심을 걸고 꼭 이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어떻게든 이 악물고 덤비는 것이다. 서로의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 펼치는 싸움이기 때문에 이 승부에 어떤 사전 연출이나 제작팀의 개입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승리만을 위해 서로 대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TV에서 보는 재방송에서 종종 이대은 선수가 절망하며 외치는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아 왜 또 쟤들 이 악물고 덤비는거야!" 승부의 세계에서는 당연하지만 상대팀이 보이는 승리에 대한 커다란 열정에 압도되어서 내뱉는 말인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승부는 진지하고 치열하다.
3. 돈 받는다는 건 프로라는 것이야
시즌 1에서는 이승엽 감독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 시작하다가 중간에 김성근 감독으로 교체가 되면서 몇 경기를 치루고 끝나게 된다. 시즌 2부터 본격적으로 김성근 감독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 시작되는데... 이미 프로계에서는 정평이 난 승부사 김성근 감독의 등장에 더는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게 되었다. 김성근 감독은 오자마자 선수들 연습을 체크하고 연습시키면서 몸을 만들어줬다. 명성과 달리 타율이 바닥을 치고 고교 선수들도 쉽다고 생각하는 박용택 선수부터 단근질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김성근 감독의 등장은 기존 프로그램의 성격을 완성시키는 방점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이유는 바로 종종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말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이 처음 부임하고 두 번째 경기 때, 그는 라인업을 발표하고 이런 말을 한다. "돈 받는다는 건 프로라는 것이야". 은퇴를 했고, 프로야구팀에서 떠났으며, 아마추어 팀과의 경기에서도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둬 자존심도 꺾이고, 의욕도 떨어진 선수들에게 전한 말이었다. 이 말은 단지 선수들에게 전한 말이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는 모든 시청자들에게 전한 말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패들을 겪게 된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부터 사회에 마주하게 되는데, 종종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당하고, 시험을 통해서, 내 학업적 능력을 통해서 많은 실패를 보게 된다. 학생 때만이 아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더 많은 실패 속에서 머물게 된다. 부장이란 타이틀을 달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그러면 뭐하나. 밑에 있는 후임들은 늘 나를 뭣같이 보고 이 후임들에 비해 내 실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곧 밀려날 것 같고 밀려나면 정작 갈 곳은 없는데 가족들 먹여 살리는 것은 막막하고... 40대면 대기업에서도 정년퇴직을 강요받는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최강야구]에 등장하는 선수들이 남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 이야기다.
나는 아직 멀쩡한데.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조금 실력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밀려나야 하는 대한민국의 가장들. 그리고 다양한 이유로 프로팀 눈에 들지 못해 팀을 찾아 전전하는 여러 어린 선수들. 이들의 이야기가 이 프로그램에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저 은퇴한 선수들이 모여서 야구하는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그것은 사회에서 밀려나고 소외되고 그런 상황에 자꾸 놓이게 되는 대한민국 가장들의 치열한 생존 이야기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은 결코 가볍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강 몬스터즈]의 승리와 승리를 향한 열정, 노력은 단지 야구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승화되어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다.
그래서인지 김성근 감독의 이 말이 대한민국 가장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돈 받고 있고" 그렇다는 것은 "프로라는 뜻"이다. 대기업을 다니지 않아도, 월급쟁이가 아니라 자영업자라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거나 일용직을 돌고 있더라도 우리는 돈을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프로라는 자부심을 가지자는 것. 그러니 더 열심히 살아가고 노력하자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고 본다.
4. 마무리
[최강야구]는 넷플릭스에 시즌 3까지 업데이트 되어 있다. 그래서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다면 이번 기회에 정주행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프로그램 길이가 굉장히 길다. 처음에는 1시간 30분이었던 것 같은데 들쭉날쭉하더니 어떨 때는 2시간이 되기도 한다. 마치 아침 드라마 보는 것처럼 일일 연속극 보는 것처럼 켜놓고 이런저런 일 하다가 이벤트가 생기면 집중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결국 야구 이야기고 승부 이야기인데 한편으로는 펼쳐지는 서사가 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부분이 이 프로그램 제작진이 고민하는 영역일 것이다. 결국 펼쳐놓는 서사가 뻔하고, 그 서사에 따른 구성 역시 뻔하다는 점. 그래서 더 리얼로 가지 않았을까 싶고, 그래서 더 예능적 연출을 넣은 것은 아닐까 한다. 그 순간순간 긴장감을 줘서 집중시키지 않으면 계속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다큐에 지쳐 시청자들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웰메이드다. 잘 만든 프로그램이니 만큼 한번쯤은 시청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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