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성경] 25일 - 사람의 욕심으로 벌어지는 참사 (민 16장 ~ 20장)

제시안 2024. 6. 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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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글

 

어떤 사람들은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말을 뒤집는 것은 예사고, 있지도 않은 일을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혹시 그 사람이 그것을 그대로 믿고 있다 하더라도 문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믿으려고 하는 것, 그리고 자기가 자기를 속이고 자기 생각대로만 믿어버리는 것. 이런 것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래서 늘 자기의 생각이 맞는지 의심하라고 하는 데카르트의 명언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생각하는 행위를 하는 것 외에 증명할 수 없다는 단순한 증거 말이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의 욕심에 대해서 많이 기록되어있다. 무수히 많이 나온다. 구약 때도, 신약 때도 어김이 없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이러한 역사가 얼마나 오래도록 반복되어 왔던 것인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다. 어쩌면 이런 고통을 끊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 어려운 회복의 역사를 시작하셨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고통을 위해서도,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말이다. 그것이 진정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이번에 본 [민수기] 16장~20장에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혼란이 찾아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질서가 무너지고 사람들은 모세에게 대들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이미 약속한 내용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원망과 탄식,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 난무하였다. 이 모습은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나의 모습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생각으로 글을 한 줄, 한 줄 읽어나갔다.

 

 

1. 욕심이 부른 참사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다시 광야로 가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의 마음 속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까? 그 절망감으로 인하여 이들 사이에는 분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분란과 소요 중에 이들이 주장하는 말들은 너무나 놀랄만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2.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3.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민 16:2-3, 개역한글

 

13.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14.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민 16:13-14, 개역한글

 

하나님이 택하신 목자는 모세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함께 하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며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시기 위해 명하는 목자는 모세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는지 자신들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모세가 스스로 자신을 높인다며 비판을 한다.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애굽에 보내시고, 모세를 통해 바로를 심판하셨다. 그런데 바로가 모세와 대적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괴롭게 하자 오히려 하나님에게 벌 받는다고 모세를 탓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랬던 이들이 모세를 통해 애굽을 나와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 근처까지 와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자신들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이는 정말이지 놀라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지를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결과 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않느냐, 다시 광야로 가느냐며 모세를 책망한다. 거기에 모세 보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다는 놀라운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이 발언을 한 사람들은 모두 땅이 갈라져 이들을 삼키는 재앙을 받고 죽게 된다. 

 

사람들은 여전히 모세만 보일 뿐,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모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이라고 전하지만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뜻인지 여전히 이들은 모르는 것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은 떠나가시고, 죄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면 죽게 되는 사람들의 상황으로 인해 벌어지는 참상이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셨지만 그 음성만 들어도 숨이 멎을 것 같다며 모세를 통해 명해달라고 부탁했던 그들. 그들의 모습은 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내가 따르는 목자가 진정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목자인가 구분을 잘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목자는 증험과 성취가 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있다.(신 18:22) 예수님 역시 성경이 나를 증거하고 있다고 하며 하나님이 예언하신 모든 말씀들을 이루셨다는 점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목자임을 증거하셨다.(요 5:39, 눅 24:44, 고전 15:3~4) 그리고 주 재림 때 예수님이 보내시는 목자가 있으니 그는 계시록의 모든 예언의 실체를 보고 들어 증거 하는 분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있다.(계 22:8, 16)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이런 증거가 필요했던 것인가? 그들의 상황은 오늘날과 조금 다르다. 이들은 이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목자를 만났으나 그 목자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의 말에 순종치 아니하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자신들의 욕심과 자기 생각 때문이고, 둘째는 우리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면 이들이 모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이렇게 범죄하였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욕심이 눈을 가리고, 귀를 덮으며, 자기가 한 말과 경험들을 잊게 만드니... 결국 모든 것은 욕심으로 인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욕심으로 우리 생각을 더 공고히 하는지 고민해야 하겠다.

 

2. 나가는 글

 

때때로 몇몇 사람들이 자기가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며, 자기가 하나님에게 말씀을 받았다며 주장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예수님은 주 재림 때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니 이들의 미혹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고,(마 24:4~5) 성경에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목자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방법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기록들에 대해서 꼼꼼히 살펴보고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목자에게 그 기록들을 통해 검증해 보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자기가 하나님이 보내신 목자라고 할 것 같으면 [요한 계시록]의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요한 계시록]의 말씀을 우리가 아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풀어줄 것이다. 성경적으로 푼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성경이 곧 하나님 말씀이니,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의 예언의 뜻을 푸는 이는 하나님을 진정 만난 사람 외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욕심을 이겨내고, 오늘날 때에 맞는 신앙을 하는 참 신앙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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