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는 글
[민수기]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펼쳐진다. 하나님은 몇 번이나 분노를 발하시는데, 이는 사람들의 부족한 믿음과 악한 마음 때문이다. 몇 번의 이적과 기적을 통해 노예처럼 살던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을 몰라보는 사람들. 성경을 보면 대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평소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따르며 살아가고 있을까? 스스로도 참 부끄러운 일들이 많다. 매일 성경을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우리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
[민수기]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의 신앙을 많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런 생각과 다짐을 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 읽은 장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만나만 먹어 힘들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위해 메추라기를 보내주시고,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간 족장들이 불평불만을 토로하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갈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 등등.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구절을 뽑아봤다.
1. 선지자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목자의 차이
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민 12:6-8, 개역한글
선지자와 모세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글에서 그 차이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일반적인 선지자와 모세의 차이를 분명히 설명해주신다. 선지자는 이상을 보여주시고, 꿈을 통해 대화를 하신다고 한다. 하지만 모세는 아니라고 하신다. 직접 만나 명백하게 말하신다고 이야기하신다. 예수님은 어떠셨을까? 예수님 역시 하늘에 올라가셨다고 하시며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한다고 이야기하셨다. 이런 내용을 통해서 예수님 역시 하나님을 대면하고 명백한 말을 전달받으시는 분이셨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이 이 땅에서 역사를 하시는 때에는 보내신 목자와 함께 하신다. 출애굽 때에는 보내신 목자 모세와 함께 역사를 하셨다. 모세를 통해 애굽 바로왕을 심판하시고, 애굽에 사로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밖으로 이끌어내셨다. 그리고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함께 가셨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마찮가지였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자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에게 임하셨고, 이를 세례 요한이 보고 증거하였다. 이후 하나님은 예수님과 동행하셔서 모든 역사를 이루셨다.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셨을 때에도 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노정이 기록된 신약 4복음서와 계시록은 정말 중요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선지자는 다르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직접 보거나 하나님께 명확한 말로 듣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계시록에는 온갖 이상이 기록되어있다. 사도 요한이 직접 이상을 보고 기록한 계시록. 위 구절을 통해서 보면 사도 요한은 선지자의 입장으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상을 기록한 것이다. 선지자는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 실제로 다니엘도 자신이 본 이상을 기록하고 이상을 보여준 천사에게 이것이 무슨 뜻이냐 물으니, 천사는 이것들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되어야 할 것이라고만 전해준다.(단 12:8~9) 즉 다니엘 역시 그 뜻을 알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내주신 목자는 이 모든 것을 실제로 보고, 듣고, 깨달아 전하게 된다.(계 1:2, 계 22:8, 16) 그 차이는 심히 커서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늘 하나님이 보내신 목자는 온갖 멸시와 핍박을 받게 된다. 이는 우리 욕심 때문이다. 죄에 빠져 욕심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은 부단히 노력하셨다.
2.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말라
[야고보서]에서는 우리에게 큰 경계가 되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시험을 주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시험은 오직 사람의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그 욕심은 죄를 짓게 만들고 결국 사망의 길로 이끈다는 것이다.(약 1:12~15) 실제 우리는 역사에서도 이런 상황들을 많이 보게 된다. 천하를 주름잡던 영웅들도 자신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멸망을 자초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된다. 역사 뿐만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도 이런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된다.
하나님 역시 사람들의 이 모든 죄가 욕심에서 기인하시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이 욕심에서 멀어지기를 바라셨다. 그중 한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3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9.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41.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하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민 15:37-41, 개역한글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는 것뿐만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계명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생각나게 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신 것이다.
사람이 쉽게 눈앞의 욕심에 넘어간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연약함을 어떻게든 덜어주시고자 노력했지만... 정작 하나님이 바라셨던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지키고, 따르는 것을 사람들은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마치 우리는 매 주일마다 교회에게 가서 예배를 드리면 그간 지었던 죄를 모두 사함 받는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교회에 가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가를 배우고 사회에서는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배우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행되기를 기도하고 바라며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그 본의를 잊어서는 안 된다.
3. 나가는 글
사람의 욕심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게 된다. 어떤 것이 욕심이고, 어떤 것이 욕심이 아닌지에 대한 구분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고, 그 말씀을 기준으로 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며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를 생각한다. 그때에 믿음 가진 자가 있겠느냐고 반문을 하셨던 예수님. 신앙에 대해서 등한시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까맣게 잊고 예수님을 다시 보내도 결국 예수님을 찌르고 마는 신앙인들의 잘못이 다시금 반복될 것이란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된다. 이는 계시록에도 예언되어 있고, 4복음서에도 곳곳에 예언된 말씀들이다. 예언이 되었다면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때 등장하는 목자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하나님께 직접 듣는 목자일 것이다. 마치 모세처럼 말이다. 그런 목자를 우리는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다시 예수님을 죽였던 그런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부디 우리 모두 마지막 때 하나님이 보내신 목자를 만나 구원의 길에 다다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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