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는 글
아담이 범죄한 이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지구촌에 머물지 못하고 떠나가게 되셨다. 하나님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녀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지만 회복은 쉽게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심에 죄를 지어갔고, 사단 마귀의 훼방으로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세상과 구분된 이 나라를 시작으로 지구촌 회복의 역사를 진행하시고자 마음먹으셨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나라에도 법과 질서가 있어야 하는 법. 레위기에는 다양한 하나님의 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제사에 짐승의 피를 동원한다고 하여 하나님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프로이트에서는 광야에서 짐승의 피를 탐닉하는 무서운 존재의 신으로 하나님을 그렸다. 하나님은 피를 탐닉하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심판 때에는 무서운 분이심에 틀림없지만 하나님 역사의 기본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함께 머물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이 제사는 왜 필요로 하는 것일까?
1. 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은 거룩하신 존재로 죄가 있는 이들은 하나님 곁에 가지 못한다. 하나님을 만나면 죽기 때문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그 말씀 그대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아직 죄가 있기 때문에 죽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회복을 하시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의 죄를 해결하셔야 했다. 그래야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죄라 하면 먼저는 법이 있어야 한다. 법을 통해서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죄가 아닌지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애굽을 한 당시에는 법이 없었으니 무엇이 죄인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사람이 만든 나라들만 가득하던 세상이었다. 사단과 마귀가 통제하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지만 법이 다 제각각이고 이 법들은 하나님의 뜻과 다른 법들도 많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로 만드신 것이다. 이 법의 목적은 하나님과 함께 사람들이 사는 것이다. 오직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은 법을 세워주셨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제사를 지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죄를 지었는데 짐승을 잡아 바치는 것도 그렇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살리기 위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지은 사람의 피를 죄값으로 치러야 하는데 사람이 자기의 죄도 모르는 와중에 죄를 지을 때마다 피를 죗값으로 치르면... 그 사람은 오래지 않아 죽고 말 것이다. 이에 방안을 세우신 것이 바로 짐승을 통해 그 죗값을 대신 치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죄를 알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죄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먼저는 죄를 해결하기 전에 죄를 알게 하는 것... 이 단계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레위기에는 여러가지 제사와 절기,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법에 대한 내용들이 기록된 것이다. 이 내용들을 통해서 우리가 더는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이런 성찰을 거듭해 죄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너무 악하고, 사람들이 사단과 마귀에게 대항하기에는 영을 보지 못해 부족한 면들이 많았다.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잊고 멀어지게 되었다. 이는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 예언을 하셨는데 그대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결국 또 죄의 늪에 빠져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럼 이런 고통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일까? 하나님은 또 다른 어떤 계획이 있으실까?
2. 의인의 피, 유월절 어린양 예수님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고 간 예수님. 예수님의 이런 행적은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다. 예언된 그대로 행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나,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겠다는 목적과 다짐으로 살아가셨기에 이룰 수 있었던 일들이다. 하지만 그런 예수님도 마지막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우셨던 것 같다. 간절히 하나님에게 기도드리며 이 쓴 잔을 멀어지게 해달라고 하셨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아직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었고, 하나님의 큰 역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때였던 것이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시게 된다.
예수님이 흘려주신 의인의 피로 말미암아 드디어 속죄의 기회가 열렸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의 효력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있지 않았다. 만약 피의 효력이 있었다면 그날로 영생이 이루어졌어야 할 것이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도들 뿐만 아니라 초대 기독교 신앙인들은 순교로 자신의 믿음을 지켰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기독교는 핍박하지 않는 종교로 자리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항상 사망의 늪에 머물렀던 우리에게 생명의 길로 가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진정 유월절 어린양의 실상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가 효력을 발휘하는 때는 언제일까? 신약성경을 통해서 본 바, 그때는 바로 계시록 성취 때이다. 이때 하나님의 모든 법들은 완성되고, 진정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이며 사람들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아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언제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지, 이루어지게 된다면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성경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이 오직 우리가 구원의 길을 걷게 해주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3. 나가는 글
레위기를 다 읽고 나서 오늘날을 생각해본다. 하나님의 법은 세상을 참 많이 변화시켰다. 구약 레위기의 말씀을 통해 죄가 정립이 되었고, 신약 예수님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과 우리가 모두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누구 하나 옳다, 그르다 할 수 없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노력하는 것... 그것 외에는 없게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증거 하는 이가 있다면 그 이를 만나 그 증거를 들어봐야 할 것이다. 그전에 성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신약과 계시록에 약속한 하나님의 약속을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온전히 성경적으로 증거 하는 이가 있다면 그 이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님과 같은 목자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귀를 닫고, 눈을 감고, 내 생각에 빠져 참 증거와 증언을 외면한다면... 과거 예수님을 죽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아는 것에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또 열린 마음으로 참 증거를 하는 이를 찾아야 할 것이다.
부디 하나님의 인도로 참 증인을 만나 구원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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