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는 글
한동안 블로그 운영 강의를 시청하고 있었다. 온라인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사이트에 가서 특정 강사의 강의를 선택했다. 그리고 쭉 보고 여러 인사이트도 얻고, 다양한 운영법을 배웠다. 특정 강사의 실력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실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랑했고, 심지어 자신의 실력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실적을 냈으니 이렇게 강의를 올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목적은 각자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선의를 베풀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커리어를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서, 누군가는 또 다른 수익창출을 위해서... 그리고 이 수업을 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또 다른 다양한 목적이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시청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공간이 온라인상으로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흔히 종교를 가지고 있냐, 교회에 가냐 라고 묻게 되는데 그 말의 어원을 살펴보지는 않았다. 레위기를 읽다 보면 참 여러 생각이 들지만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레위기가 오늘날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편지라고 할 것 같으면 레위기에 가득 적혀있는 여러 제사들의 방법을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으니 전해주신 것 아닐까? 과거 모세와 함께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한 법칙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연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제사였던 과거의 법칙이 예수님이 오셔서 예배로 개혁한 후 신앙을 하는 사람이다. 실제 주변에서 나처럼 성경 통독을 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레위기가 한 차례 위기가 오는 장이라고 다들 말하곤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교육"에 대해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종교와 교회의 어원에 대해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1. 회복을 위한 첫 발판
아담 범죄 이후 죄로 가득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살아간다. 그 중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한 약속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 역시 무엇이 죄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요셉을 시기질투하여 그를 이방 상인에게 팔아버렸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요셉이 죽었다고 보고를 한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는 이집트 관료를 우발적으로 죽이고 광야로 도망간다. 서로 짐승처럼 자신의 욕망에 의해 충동적으로 살아가던 시대. 하나님이 모세를 선택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로 이끄셨을 때 상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죄에 빠진 인생인지라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그 음성을 들을수도 없다. 이런 인생들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하나님은 고민하셨을 것이다. 먼저는 십계명을 통해 법을 주시고, 죄를 깨달을 수 있도록 율법을 세워주셨다. 죄를 지으면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려 죄 사함을 받도록 한 것이다. 죄가 있는 사람은 숙명처럼 죽어야 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하셨으니 말이다. 그 말씀처럼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기를 반복하고 있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볼 때 오늘날까지 죄가 해결되지 않았다. 만약 죄가 해결되었다면 사망이 없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 그리 기록되었으니 말이다.
하나님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는 인생들을 위해 모세에게 책을 써서 사람들에게 전해주시기로 하셨다. 그것이 성경이었고, 성경의 시작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에 따라 다섯 권의 책을 썼다 하여 모세오경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이 모세오경 외에 다른 책들은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66권의 책이 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의 시작은 이처럼 미약하지 않나 싶다. 모세오경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나는 제사와 규례와 각종 절차들이 기록된 레위기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것들을 가르치셔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알려주시고, 그 법에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가지를 만드셔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일러준 사람이 죽어도 계속 계승되어 유지될 수 있도록 책을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꾸준히 하나님이 일러주신 것들을 배우고 또 전해줘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종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들을 서로 배우고 전하는 모임 말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사람의 교훈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것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 그것이 종교다. 교회 역시 가르치는 모임으로 초기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구약의 약속대로 오시고, 구약을 다 이루셨으며 다시 오실 때 이루실 것들을 예언하고 가셨음을 배우는 모임이었기에 교회라고 했을 것이다. 불교는 절이라 하고, 이슬람은 사원이라고 하는데 유독 기독교는 교회라고 하는 이유는 이래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렇게 배운 결과 처음에는 모세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행하였다면, 이를 배운 아론이 모세의 뒤를 이어 제사장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22.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오니라
23.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레 9:22-24, 개역한글
광야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다소 미흡하고, 부족해 보였을 것이다. 심지어 당시 함께하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왜 자기가 이 제사를 해야 하는지 모르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죄라고 하니까 죄인가 보다 하는 이들도 있고, 그렇게 하라고 하니 그래야 하나보다 하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들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규범을 익히고 지켜나가는 삶을 살아갔다. 세상에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이들이 비로소 참 종교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세상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이들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인 내가 봐도 이런 것들을 통해 비로소 선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비웃고 비방해도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참 종교인. 그것이 바로 선민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2. 나가는 글
유대인들이 치르고 있는 대학살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든다. 저들은 과연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저러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증오에 물들어 저렇게 살육하는 것일까? 궁금하다.
어떤 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할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당신이 믿는 종교는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적혀 있느냐 라고. 유대인들이 믿는 종교는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적혀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런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줄 것인가? 그분은 전쟁으로 희생된 청년들에게 할 수 있는 보상은 다시 살려내는 것이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지만 그것도 못하면서 왜 그 청년들을 죽는데 내어 보냈냐는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고 국민을 선동해 전쟁터로 보내는 것은 모두 전쟁을 경험한 적도 없고, 전쟁에 참여할 수 없는 늙은이란 사실이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진정 하나님의 뜻을 알고 깨달아 신앙할 수 있기를 바란다. 먼저는 나부터. 그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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