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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최초의 인간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제시안 2024. 5. 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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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략한 감상

알베르 카뮈에 대해서 아는 바는 많지 않다. 이번 글을 쓰면서 이렇게 저렇게 뒤적일 뿐이다. 명색이 문학청년이었다는 사람이, 그의 대표작 [이방인]도 제목만 알 뿐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대표작도 보지 못한 상황에 오히려 그가 말년에 집필하다 완고하지 못했다는 작품을 보게 되어 얼떨떨했다. 하지만 그 작품만 보게 되더라도 알베르 카뮈의 뛰어난 문체와 구성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완성 작품이었던 터라 여기저기 비어있는 단어들도 많이 있다. 마지막에는 부록이 있어서 각 챕터별 작가의 생각들을 메모해 놓은 것들도 확인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앞부분은 유려한 문체와 내용 전개로 흥미롭게 읽히는데 뒤로 갈수록 문장이 길어지고 수정이 필요하다는 대목들이 더러 나온다. 거기에 순식간에 지나가는 내용들이 더러 있어서 읽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자크가 알제리 어느 한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로,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사망하고 할머니와 엄마, 삼촌과 함께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보다 보면 내 이야기 같은 부분들도 더러 있었다. 여기에 자신의 집의 환경과 자신이 마주하는 세상과의 간극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들도 종종 보였다. 사춘기 아이의 감수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들에서는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마지막까지 완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고, 아직 대표작을 보지 못해서 이 작가의 작품 성격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안타까웠다. 기회가 되면 [이방인]과 [페스트]를 통해 작가의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 

 

 

2. 발췌

돌투성이의 길 위로 굴러 가는 작은 포장마차 저 위로 크고 짙은 구름 떼들이 석양 무렵의 동쪽을 향하여 밀려가고 있었다. 

첫 구절

 

스물아홉 살. 갑자기 어떤 생각이 뇌리를 치는 듯하여 그는 몸속 깊이에까지 동요를 느꼈다. 그 자신은 마흔 살이었다. 저 묘석 아래 묻힌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지만 그 자신보다 더 젊었다. 

p. 33

 

잠시 후 그는 입 안과 목구멍 속에 눈물이 가득한 채, 불쌍히 여긴 삼촌이 떠준 수프 접시를 앞에 놓고 눈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하려고 전신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가 할머니에게로 잠시 눈길을 던지고 나서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얼굴로 그를 돌아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수프 먹어. 이제 됐다. 이제 됐어.] 그제야 그는 울기 시작했다. 

p. 62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범죄자까지 가게 되는데 아시다시피 그 이름은 카인이라, 그 후부터는 전쟁이야. 인간은 끔찍해, 특히 사나운 태양 아래서는.

 

아이란 그 자신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부모가 그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는 부모에 의하여 규정된다. 즉, 세상 사람들의 눈에 규정되는 것이다. 바로 그 부모를 통해서 아이는 진짜로 자신이 판정된다는 것을, 돌이킬 수 없이 판정된다는 것을 느낀다. 

 

3. 작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

 

알베르 카뮈

1913년 11월 7일 ~ 1960년 1월 4일 (향년 46세)

대표작 : [이방인](1942), [페스트](1947)

 

프랑스령 알제리 태생으로 프랑스 본토에서 이주한 프랑스인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녀였다.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하여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살았다. 어머니는 남편 사후 친정에서 지냈다. 모친은 문맹에 청각 장애를 가진 하녀였는데 초등학교 담임이었던 루이 제르맹 선생님의 설득으로 중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 이 내용이 [최초의 인간]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고등학교 진학하여 평생의 스승 장 그르니에를 만나고 그의 제안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학생시절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고질병인 결핵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자동차 수리공, 신문사 인턴 기자, 가정교사 같은 여러 일로 벌어먹었다. 22살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여 좌익 운동을 하고 2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자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활동했다. 

 

전후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하게 주장하였고, 아후 알제리 독립도 반대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에 알제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를 정작 알제리에서는 대우해주지 않는 분위기. 그가 살던 집은 기념관이 아닌 일반 가정집으로, 문학기념비는 카뮈의 이름이 지워진 채 방치되었다고 한다. 

 

평소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이 좋다는 인터뷰를 남겼는데 지인의 차에 타고 가던 중 나무를 들이박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1957년 43세의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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