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 안에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들어가는 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을 감상하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학창 시절 즐겨보던 것이고, 나름 모으고 있는 코믹스도 있다. 그렇지만 깊이는 부족하다. 옛 감성에 사로잡혀 넷플릭스 추천으로 보게 된 일본 애니. 하지만 그 속에는 굉장히 끔찍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특히 현재 일본 젊은 세대들의 절망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였는데... 이 내용이 우리나라에서도 통용된다는 것은 한국 사회 역시 일본의 모습들처럼 젊은이들이 점점 숨쉬기 어려운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한다.
특히 인상깊게 본 작품은 [수성의 마녀]와 [스파이 패밀리]. [수성의 마녀]의 경우는 시즌 2는 다 보지 못한 상황에서 리뷰를 작성해서 내용이 부족한 점이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내용에 대한 리뷰가 아니라 이 이야기는 이 작품들 이면에 펼쳐진 이야기에 대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야기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없어도 감상이 가능하다. 단, 상황에 따라 영화 내용을 스포 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 바란다.
1.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사람은 살아가면서 "나"라는 존재를 정의내리고, 이에 따라 자신의 인간관계, 그리고 삶의 태도를 정립해 살아간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이전에 한국에서는 가족관계가 굉장히 큰 영향을 주었다. 어떤 가문의 몇 대손이라든지, 어떤 계급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등등. 한국전쟁으로 이 모든 것들이 초기화된 이후에도 한동안 가족관계에 따른 "나"라는 존재의 정의는 유효하였다. 지금에 와서는 이것이 변질되어서 가족의 재력, 자산 등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지만...
일본에서는 이 경향이 다소 강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수성의 마녀]를 먼저 보자. 주인공 슬레타 머큐리는 건담을 움직일 수 있다. 건담은 이 세계에서는 금지된 기술로 운용한다는 것이 들통이 나면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몰살될 수 있다. 이유는 건담 시스템이 파일럿을 과도하게 몰아붙여 죽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 그렇지만 주인공 슬레타 머큐리만은 그런 부작용이 없이 자유자재로 건담을 움직인다.
그런데 그녀의 부모님은 이런 건담을 안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거대기업의 횡포로 이들의 연구는 무가치하게 변질되었고, 처참하게 버려졌다. 이에 어머니는 살아남아 복수를 다짐하고 거대기업에 잠입하게 되고, 딸인 머큐리 역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철저히 교육을 시켜 건담 교육기관에 입학을 시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서일까... 머큐리는 다소 사회성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멘탈이 나가게 되면 어머니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곤 한다. 그런데 그녀 주위에 있는, 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모두 부모의 가문으로 자신의 위치와 입장이 정해지고 그 속에서도 치열하게 자신의 위치와 입장을 뒤바꾸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위 학교에는 정상적인 아이들이 없는 것이다. 모두 부모의 빽을 믿고 발광하는 아이들 밖에 없다. 더 문제는 이를 제재해야 할 선생도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의 젊은 혈기는 혈기이고 선생은 그것에 속수무책 당황하는 존재로만 등장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학생들의 갈등은 자신의 배경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괴리에서 나타나는 갈등으로만 점철된다. 아버지를 죽도록 미워하지만 아버지의 회사가 가진 능력을 외면할 수 없어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모습이라든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는데 주인공에게 패한 이후 버림받아 주눅이 들어버리고 절치부심을 다짐하는 모습이라든지... 이런 모습들 속에는 건강한 욕망의 투영과 자신의 발견, 그리고 성장이 들어있지 않다. 소위 어른들의 세계라고 하는 영역과 자신의 욕망이라는 영역으로만 한정되어서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모습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사람의 성장이라는 것이 이토록 단순한 것인가? 세계를 알아가고, 발견하고, 자신이 알던 세계와 다른 모습에 실망도 하지만 실력을 갖춰나가 마침내 절망했던 자신을 이겨내는 것. 그것이 성장이 아닌가? 너무나 강력한 초자아로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거북하게만 보이고 이들이 그토록 벗어나려고 하는 아버지, 기존의 질서에 결과적으로 순응하고 적응해 나가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그 작고 협소한 세계관에 말이다.
[스파이 패밀리]의 경우에는 더 명확한 목적이 있다. 아냐는 고아이다. 로이드는 일류 스파이로 적국에 파견이 된 상황인데 국방부장관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오기 위해서 급히 가족을 결성할 필요가 생겼다. 그리고 딸을 국방부장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입학을 시켜 그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오고자 하는 것이 이 내용의 주축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어린 아이들이 두르고 있는 것은 가족의 지위나 부와 같은 배경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다미안을 따라다니는 두 아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의 영향력에 역할과 자리가 주어지고 이에 과도하게 의식하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들이 나타나서 영 좋지는 않았다.
아냐는 특히 미션이 실패하게 되면 가족이 해체되고 자신은 다시 고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로이드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다. 여기에 아냐의 특유의 능력, 사람의 속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더해져서 이야기는 재미를 더해간다. 아냐를 중심으로 로이드와 요르가 서로 다른 고민을 하는 것을 오직 아냐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둘의 속마음을 알게 됨과 동시에 아냐의 반응을 살피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하지만 이것들을 보게 되면 아냐의 욕망과 목적이 과연 건강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냐의 목적 역시 [수성의 마녀]에 등장하는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2. 아버지 = 초자아의 영역
아버지에 대해서 굉장히 큰 반감을 가진 학자가 있었다.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는 여러 사례 연구를 통해서 인간의 무의식을 밝혀냈고, 이는 후에 심리학이라는 영역을 만드는 획기적인 발견이 되었다. 인간의 무의신과 관련된 여러 사례들이 많이 있다. ADHD가 있고, 트라우마가 있고. 현대를 살아가면서 하나씩 정신병리학적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며, 정신과 진료 역시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는 것처럼 일상화되는 날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다. 뭐 미국은 잘하고 있으니...
프로이트가 제시한 초기 심리학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등장한다. 소위 성장기 어린이가 동성의 부모에게서 거세의 위협을 느끼는데 이것으로 동성의 부모를 질투한다는 것이다. 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프로이트 심리학의 한계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만큼 원초적 본능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에 너무 무시할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하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런 심리들이 굉장히 강하게 작용한다.
주인공에게 강력한 초자아로 존재하는 기성세대들. 그러나 이 기성세대들에게 저항하는 본능에 힘겨워하는 주인공. 하지만 기성세대와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현실의 한계를 깨닫고 결국 이들에게 순응해가는 길을 걸어가는 모습. 이것은 프로이트가 제시하는 심리학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초자아로 표현되는 기존 질서, 기성세대들은 너무나 강력한 존재라서 이기기 어렵다. 소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등장하는 동성의 부모인 것이다. 이들에게 반항하고자 하는 마음은 원초적인 것인 소위 리비도, 무의식의 영역에 자리한 것이다. 처음에는 자아, 곧 에고가 이 리비도의 영향으로 인해 끊임없이 슈퍼 에고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곧 슈퍼 에고에 순응하게 되고 자신의 리비도를 조절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이야기의 깊이를 나타내는 좋은 이론으로 성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성의 마녀]와 [스파이 패밀리]에서는 이것이 굉장히 악의적으로 드러난다. 그저 이야기의 깊이를 갖추기 위한 이론적 배경으로 한 인물의 성장기를 그려내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 질서에 순응시키려는 다분한 목적으로 제작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방안이나 대안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역시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이다. 서로에게 지워진 딱 그 정도의 공간에서 벗어나거나 더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에 머무는 것. 이 이야기들이 가지고 있는 교훈은 겨우 그 정도이다.
즉 이야기 전체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인물들을 내세워서 이들이 어떻게 사회에 순응하게 되는가를 가르쳐주는 방법론을 보여주는데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초자아에 굴복하는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친다면... 리비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수성의 마녀]에서는 결국 인물들이 각각의 부정들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서로 다른 모습들과 대응들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스파이 패밀리]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각자의 욕망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낼 수 있어서일까?
3. 일본이라는 사회가 가진 한계
고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전남대에서 강의를 했다. 그때 그는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경고를 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피와 땀을 먹고 산다고 했는데 일본은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접하게 된 이 영상이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일본의 한계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는 그의 예견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pk6meSmdHY
일본이 가진 한계. 그것은 소수가 독점한 권력을 통해 국민들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도록 사회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소수의 지배층이 지도력을 잃어버리면 사회는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위기가 온다고 해도 큰 변화를 이끌어내기 힘든 구조로 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에 대한 어떤 변화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기존 체제에 대한 불신과 변화에 대한 기억이 없다보니 체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저항하는 법에 대해 모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안정성은 변화하는 법을 학습하지 못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고... 지도층은 이를 모르는 것이 아니니 이런 안정성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애니메이션이지만 이 속에도 결과적으로 기존 체제가 가지고 있는 방법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역사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4.19는 우리나라 국민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보여줬다. 이에 군사독재를 하는 시점에도 국민들의 요구를 묵살하지 못한다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독재가 이어졌고, 마침내 6월 항쟁을 통해 군사독재마저 청산하게 되었다. 이후 비선실세라는 최악의 문제에 대해서도 촛불집회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탄핵으로 결과를 이끌어낸 저력이 있는 국민이다. 이것을 보면 일본과 우리나라는 정말 다른 역사적, 정치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더 큰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과연 자신들의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이들은 알고 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에 흡수되어 한 부속품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속에서 이끌어내는 혁신은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가? 지금의 일본 사회를 본다면 그 방법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강력한 초자아가 필요한 이유? 한국에서는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강력한 초자아보다는 너무 다양한 초자아에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에 맞춰야 하는지 혼란스럽고, 너무 좁은 사회라서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일본은 어떤가? 너무 강력한 초자아가 있다. 그 초자아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자아가 보인다. 그런데 그 자아는 대체 왜 그런 시련 속에 놓여야 하는가? 사실은 더 편한 길이 있는데 발견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4. 마무리
현재 107권까지 나온 만화, [원피스]. 원피스를 보면서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일본인들이 강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현 체제의 잘못을 뒤집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수 있는 해적과 같은 메시아. 루피와 같은 인물을 바라고 있다. 이 만화가 인기가 있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 뛰어나서 그런 것인가 싶지만 이면적으로는 사람들의 어떤 욕망이 굉장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렇다고 본다. 그것은 현재 체제가 잘못되어 있고, 정의라고 하는 이들이 사실은 정의롭지 않은 모습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들을 해결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들의 욕망을 자극해 줬기 때문에 오늘날 [원피스]라는 초대작 만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럼 생각해볼 것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기다리는 이 메시아적인 인물은 누구냐는 것이다. 그리고 왜 그를 기다려야 하냐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런 질문이 무색하다. 세월호 참사를 시점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용혜인 의원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은 이렇게 어떤 특정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 정의를 이루고자 정치인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일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를 하려면 자민당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 안에서 계파를 이루고, 그 속에서 돋보여야 하고... 이런 과정들이 있게 되는 것이다. [수성의 마녀]와 [스파이 패밀리]에서 이야기하는 어법과 똑같지 않은가? 기존 질서를 바꾸고자 한다면 먼저 기존 질서에 흡수되라고 하는 법칙...
이 과정에 절망한 사람들이 결국 기다리는 것은 해적이라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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