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담긴 이야기/최근 본 영화 감상

[#분석]서울의 봄 - 쓰레기를 쓰레기라 부르는데 무슨 문제 있는지...?

제시안 2023. 11. 26.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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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안에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0. 들어가는 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때때로 사람들은 [용비어천가]를 보며 반쪽짜리 [고려사]를 보며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마냥 승자의 역사라고 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삼국지"의 역사도 결과적으로 사마씨 가문이 승자이지 않는가? 그러나 지금은 늘 패배만 했던 유비에게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단지 진수라는 한 사람의 집념으로 이루어진 일인가? 아니다. 나관중이라는 사람만의 힘이었을까? 아니다. 누군가는 그 일들을 기억하고 있고, 이 기억은 전해지고 전해져서 구전으로 남아 우리에게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승자의 기억이 아니다. 역사는 사람의 기억이다. 

 

한국의 현대사만큼 질곡이 많은 역사가 또 어디있을까. 나라가 서고 풍요로워진 살림에 하얀 쌀밥이 달린 것 같은 나무를 이팝나무라 불렀다는 설화는 조선이 서서 정리한 제도로 이루어진 풍요를 이야기해 준다. 춘추시대를 거쳐 전국시대를 지나 짧았던 진의 통일, 그리고 다시금 이어진 혼란한 시대. 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등장한 한나라는 이후 놀라운 번영과 풍요를 이룬다. 세금이 넘쳐 관청 곳간에 쌓인 곡식이 썩어났다는 한나라의 풍요 역시 새로운 나라가 서고 나서 이룬 평화를 말해준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사에 그런 기쁜 기억들은 얼마나 될까? 

 

오늘 우리가 보는 [서울의 봄]은 영화인들이 기억하는 역사요, 영화인들이 하고 있는 엄정한 심판이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영화인들의 역사 바로보기는 혼란한 한국 현대사 속에서도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전하는 추모사다. 이런 영화를 우리는 봐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역사를 묻고자 하는 어떤 이들의 잔혹한 노력에도, 결국 진실은 드러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1.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 이미지 출처 : 구글

 

11월 22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등 한국에서 내놓아라 하는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여 난리난 영화다. 정말 연기력 깡패들만 가득해서 이성민도 기가 죽지 않으려고 노력할 정도였다니... 현재 굉장히 흥행을 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1979년 12월 12일에 일어난 신군부의 군사 쿠데타, 소위 12.12사태로 알려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암살 당한 후 갑작스럽게 발생한 권력의 공백기. 이때 기회를 엿보고 있던 하나회 리더이자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이 급격하게 실권자로 떠오르고 더 이상 군부가 정치에 관여하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과 다시금 군부가 정치를 잡기를 원하는 이들의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긴장을 깬 것은 전두환의 좌천 계획. 이들은 이 좌천으로 자신들의 모든 욕망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생일집 잔치'라는 작전명으로 선수를 치기로 한다. 

 

영화에서는 이런 배경은 물론 사건의 진행을 속도감있게 보여준다. 이를 위해 상황설명을 쉽고 빠르게 이해시키고자 서울 지도를 배경으로 한 CG도 거침없이 사용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가 굉장한 몰입력을 이끌어 낸 것은 이런 노력이 한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캐릭터를 비춰야 할 때, 서로 다른 내부사정으로 골머리를 앓을 때, 내적인 갈등을 느낄 때면 어김없이 속도가 느려진다. 이 완급조절로 영화는 이야기를 전하고 캐릭터를 이해시키는데도 훌륭히 성공한다. 

 

그래서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더 깊게 다가온다. 신군부에서 너무 다양한 변수들로 쿠데타가 쉽지 않자 내부에서도 심한 갈등이 일어난다. 이에 전두환 역을 맡은 황정민이 외친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는 이 말이 얼마나 허황된 말인 줄 알고 있다. 아무리 외쳐도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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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탱크 몰고 밀고 들어가서 니들 대가리를 뭉개버릴 테니까!

※ 이미지 출처 : 구글

 

그렇다. 영화는 현대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소 각색되었거나 감독의 상상력으로 연출된 부분들이 없을 순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벌어졌던 사건 그대로를 다루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런 시나리오에 화를 낸 글도 봤다. 그러면서 이 역사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가 되겠느냐, 언제까지 이런 허탈감을 느끼며 영화를 봐야 하느냐, 영화가 다큐멘터리냐 푸념하는 글도 봤다. 하지만 난 그 푸념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엄연한 기록영화다. 역사영화다. 역사에는 만약이란 말은 없고, 상상은 어떤 상황에 대한 상상일 뿐, 결과나 사건 그 자체에 대한 상상은 용납할 수 없지 않은가. 그분의 글은 그분의 역사관을 다시금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글이었다.

 

이 영화는 결말이 뻔하다. 내용이 뻔하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그간 다루는데 조심스러웠던 사건을 주저함없이 다루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실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전두환이 아니라 전두광이다. 장태완이 아니라 이태신이다. 그래서 명예훼손의 위험에서 절묘하게 빗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악역은 과할 정도로 악한 모습을 보여준다. 

 

난 오히려 그 모습이 좋다고 본다. 더 이상 미화를 하거나 악인에게 틈을 줘서 혼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특히 가장 좋았던 점은 주인공이 전두환이 아니라 장태완 장군이란 점이다. 정우성이 맡은 이 역은 시종일관 동분서주하고 어떻게든 쿠데타를 막고 이들을 잡아 벌하려는 장군의 노력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 심지어 내부의 말도 안 되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전에는 전두환의 내적 갈등이나, 그가 주인공이 되어서 정권을 탈취하는 놀라운 담력 같은 것들이 조명되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역사를 왜곡시켰다는 생각이 들고, 이들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굉장히 허둥지둥거리는 허무하고 허탈한 모습으로만 비추는 역효과를 내버렸다. 아마도 이것은 아직 남은 잔당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실명을 다룬 영화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거리낌이 없었다. 그것이 좋았다. 드디어 선한 이들을 행한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것이다. 그래서 장태완의 호랑이가 포효하는 것 같은 외침은 관객들의 마음을 더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비록 결말은 바뀌지 않더라도 말이다. 

 

3. 반란군을 잡아야지 왜 대화를 합니까!

※ 이미지 출처 : 구글

 

친일 잔존세력을 다 처리하지 못한 것과 더불어 과거 군사 독재 정권을 통해 세를 불린 이들을 처단하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에 큰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그들은 친일을 했고, 독재 정권에 아부를 했다. 그것을 통해 부와 권력을 획득했다. 그럼 그들은 죄를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가 이런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구하거나 진실 앞에 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떳떳하게 외치는 것이다. 너 같으면 어떻게 했겠냐며, 어쩔 수 없었다며. 그것에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독재는 했어도, 사람은 죽였어도 경제는 발전시키지 않았냐 하는 안하무인적 태도를 보인다. 

 

그래, 그럼 이렇게 말해주면 되려나? 너희 할아버지가 친일한 것을 배경으로, 너희 아버지가 독재 정권에 아부한 것을 배경으로 이렇게 영화나 컨텐츠를 만들어 돈만 잘 벌면 나도 그럼 되는 것 아닌가? 익명으로 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데?

 

악은 결국 자기 꾀에 넘어지게 된다. 그게 꼭 저렇게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자기 욕심으로, 자기 꾀로 결국 몰락을 초래하고 만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의를 부르짖지 못했지만 오래도록 정의를 위해 싸워왔고 그에 따른 결과들을 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힘에, 돈에, 권력에 아부하고 진실과 정의에 마주 서지 않는 이들을 향해 외치고 있다. 

 

반란군은 때려 잡아야지 왜 대화를 하냐고. 

 

우리는 너무 오래도록 대화를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심판이다. 오래도록 하지 못했던 심판을 이제 하는 것이다. 

 

4. 마무리

 

※ 이미지 출처 : 구글

 

오래도록... 너무 오래도록 우리는 악랄한 무리들의 힘에 눌려왔다. 하지만 정의는,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전두환이 죽었으니 이제 오래도록 그의 죄업을 논할 차례다. 잊고 싶겠지만 이제 영원히 그는 반란군의 수괴이고,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며, 독재자이고,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며, 경제발전을 말하고 자신의 부를 하염없이 쌓은 욕심쟁이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꼭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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