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성경] 9일 - 우리는 어떤 약속을 아는가? (창 41장 ~ 45장)

제시안 2024. 3.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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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글

 

사람에게 약속은 얼마나 중요할까? 과거 우리는 삶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갔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가족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가족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가족의 대를 잇는 일을 소홀치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이어져 온 이 약속들은 우리들의 삶과 문화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명절이면 가족들이 모였고, 가족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으며, 약속을 다 했는지에 대해서 서로 확인했다. 시대가 흘러 이 약속을 위한 모임은 젊은이들을 품어주지 못하는 어른들의 공간으로만 남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모든 약속들이 무가치해졌기 때문이다.

 

가족주의를 이루고 있던 약속은 사실 조선 말부터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유교적 윤리와 기준들은 조선이 망조가 들면서부터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는 자정능력을 잃어버렸고, 누가 봐도 악한 이들이, 누가 봐도 번드르르하게 잘 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의 한탄이 모였고, 절망한 선비들은 나라를 팔기 시작했다. 그것이 애국이라는 어리석은 판단과 함께. 그렇게 조선이 망했다. 유교, 성리학으로 이루어졌던 한국의 문화와 전통은 그때부터 점차 퇴색하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는 공자의 이상과 정도전의 정신은 사라지고 입신양명과 가족주의만 남아 판을 쳤다. 그 결과 서로를 미워하고 질시하는 문화로만 남게 된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가족들과 한 약속은 의미를 잃었는데 우리는 너무 오래도록 그 약속을 붙잡고 있었다. 습관처럼 말이다. 

 

하지만 야곱의 가족들은 아브라함과 한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그 약속으로 서로 뭉쳐있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믿음 아래 함께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들을 이끌어 애굽으로 인도하셨다. 자신이 아브라함과 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말이다. 그를 위해 먼저 보낸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요셉이다.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의 첫 자녀. 요셉이 애굽에 있었다.

 

1. 오늘날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는 제대로 아는가?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창45:7-8, 개역한글

 

 

 

요셉 역시 하나님과 한 약속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형제들의 질시와 자기에게 닥친 환난도 이겨낼 수 있었다. 이전 장들에서는 그런 것들을 유추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요셉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겪고 있는 환난과 어려움에 대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결과 자신이 처한 억울하고 힘든 상황에서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극복했으며,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치리자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그가 바로의 꿈을 해몽해 준 것처럼 7년의 풍년 이후 7년의 가뭄이 찾아왔다. 애굽은 요셉의 철저한 준비로 큰 어려움이 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야곱의 가족들은 그렇지 못했다. 가뭄에 힘겨웠고, 결국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가야 했다. 이를 통해 야곱의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요셉과 만나게 된다. 이미 요셉이 죽었다 생각하여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말이다. 

 

몇 번의 실갱이 끝에 요셉을 알아보고 회포를 풀게 된 야곱의 형제들. 이들은 요셉을 만나자 지난날 자신들의 시기로 요셉이 겪었을 고난에 대해 떠올라 두려움에 떨게 된다. 하지만 요셉은 형제들의 질시로 보인 그 모든 행위들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저리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셉이 이런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숙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했을까. 당시에는 성경이 없었을 테니 하나님과 한 약속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렇게 이야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처지를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연결 지어 생각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세상을 구하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 고작 나 한 사람을 위해 역사하신다는 것은 너무나 큰 사치가 아닐는지...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실 것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하며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행동들을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타 종교인들을 비방하고, 멸시하며,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들이 대표적이다. 성경에 보면 구약 때는 이방이라 하여 이들과 교류하지 말고, 이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이 말씀이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면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기독교를 종교로 가질 수 있을까? 가져봐야 소용 없는 것 아닐까? 어차피 구원받을 이들은 정해져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이성적이고 성경적인 판단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예수님 초림 때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는 과오를 저지르고 말 것이다.

 

2. 나가는 글

 

오늘날 기독교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이유는 약속을 몰라서 그렇다. 우리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지만 아무도 그 약속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유는 약속이 뭔지 모르고, 약속을 지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오실 때 죄와 상관없이 오신다고 하셨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나는 약속을 지킨 자로 발견되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는 약속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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