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는 글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요즘은 친구가 적은 것이 좋다, 인간관계에 너무 매진하면 안 된다는 조언들도 심심치 않게 보고는 한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좁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또 너무 관계에 매진하다 자신을 잃는 경우들이 종종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좋은 인연을 만난다면 그 인연의 고리에 집착하여도 어렵지 않게 나 스스로를 찾고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집은 대체로 상대에 대한 시기심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 시기심은 이해받지 못함에서 나오는 울분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가족력으로 이어져 오는 유전병과 같았다. 할머니와 고모는 이 유전병에서 벗어난 것 같았지만 반면에 고집이 세셔서 대화가 좀 힘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하나의 유전병과 같은 것이었다. 유전이 되어 내려오는 우리의 성격들은 가족의 외모가 크게 변하지 않고 내려오는 것처럼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가족모임만 있으면 서로에 대한 은근한 조롱과 놀림이 있었다. 서로를 비교하고 서로의 부족한 점에 대해 놀리는 일들은 사실 굉장히 좋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서로를 위해주고, 격려해 주고, 고민과 걱정에 공감해 주고, 힘을 실어주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서로를 놀리다 보니 잘못이 있거나 실수가 있으면 가족들 앞에서 위축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서로 대화는 점점 부족해지고, 어울리는 것 역시 쉽지 않게 되었다. 허물없이 어울리는 것 자체가 놀림거리를 만들거나 부모님의 위신에 먹칠하는 결과를 낳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느끼고 도망가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흠이 없어야 하는 세상.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더 좋은 것 아닐까? 아담과 하와는 서로 벗었으나 흉보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런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1.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1.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창 32:1, 개역한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고 세를 불린 다음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난다. 짧은 구절이지만 하나님과 그의 사자들을 만난 아브라함과 함께 야곱 역시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다고 하니 신기하다. 야곱이 살고 있던 시기에는 아직 하나님의 사자들이 이 땅에 머물고 있었던 것인가? 야곱은 이들을 하나님의 군대라 했다고 하니 그 규모가 꽤 되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면서 야곱은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그 일행들을 만나고 그 일행들의 모습을 군대라 하는 감상만 남겼던 것을 보면 말이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
하나님은 이 세상을 떠나가셨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다. 그의 조카 롯도 천사들을 만나 소돔에서 도망 나올 수 있었다. 이처럼 창세기의 배경이 된 시대에는 하나님의 사자들과의 만남이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보면 이들이 또 누굴 만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하나님이 택한 선민인 아브라함과 그 가족들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도 선민이 된다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선민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가 가진 죄나 원죄, 그리고 대대로 이어져온 죄가 있다면 과연 하나님을 만나도 문제가 없을까? 아닐 것이다. 그 옛날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목소리만 들어도 죽을까 하여 벌벌 떨었다. 그래서 그들이 요구한 조건은 모세에게 말하고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출 20:19) 과연 이런 상황인데 꿈에서라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면 악수를 하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지...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다.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는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도 보고,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도 두려움에 떨지 않고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증거는 무엇일까?
이런 조건들을 하나하나 채워나간다면 우리는 선민이 되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 나가는 글
생각해 보면 그동안 우리는 너무 쉽고 편하게 신앙을 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정작 떠오르는 질문들을 하나하나 꺼내놓으면 그 질문들에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곳이 없었다. 질문을 꺼낸 것으로 오히려 큰 야단을 맞거나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알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오죽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이야기도 하시겠는가?(호 4:6)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한다면 그것으로도 우리는 선민의 자격을 갖추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육적으로나 혈통으로나 선민의 계보는 끊어지고 예수님 때로부터 영적인 계보가 이어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요 1:12) 그러니 우리도 노력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면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는 진정 천국 낙원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런 세계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서로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드는, 그래서 외로움이 없는 그런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한다. 어서 속히 그런 희망찬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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