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성경] 4일 - 사랑하는 이를 구하려는 의인의 기도 (창 16장 ~ 20장)

제시안 2024. 3. 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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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글

 

설 전에 할머니를 뵈러 요양병원에 간 적이 있다. 젊었을 적엔 서울 버스노선은 다 꿰고 있었던 것을 자랑하던 할머니.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공부를 할 수 없었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글로 한글을 다 떼었다고 하셨다. 한국전쟁 때에는 남자들은 다 산속 깊은 곳으로 도망하였을 때 증조할머니와 집을 지켰다고 하시고. 집에 몰려들어온 중공군에게 밥을 지어 먹인 일도 있었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런 할머니가 침대에 누워 바짝 마른 모습으로 나오셨다. 당장 내일 돌아가신다고 해도 믿을만한 몰골에 말을 잃었다. 사람의 삶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에게 안쓰러운 내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덤덤했다. 자기도 맞이하게 될 죽음의 모습이라며 미리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며. 삶이란 이토록 냉엄하고 쓸쓸한 것인가 싶어 먹먹해졌다. 

 

가슴의 먹먹함은 상실에 대한 감정 때문일까, 아니면 세월이 흘러 늙음이 주는 추함 때문일까. 모르겠다. 다만 살 수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사랑하는 이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어릴적 왕성한 에너지를 자랑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리워서 다시 그 모습을 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것은 정말 큰 아픔이다. 오늘 본 성경에서 아브라함도 자신의 사랑하는 조카를 지키기 위해 간절하고 간절하게 하나님께 바란다. 아브라함의 간절한 모습이 그 어느곳보다 부각되지 않나 싶다. 하지만 하나님의 결정 역시 만만치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창 18:32-33, 개역한글

 

하나님의 사자를 맞이하는 아브라함. 하나님의 사자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 사라의 웃음으로 아들의 이름까지 정해지게 되는 에피소드가 나오고 이어 소돔과 고모라로 향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소돔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다는 이야기에 너무 놀란다. 그리고 어떻게든 심판을 막고자 하나님께 간하게 된다. 

 

처음에는 의인 50명을 물었다. 하나님은 의인 50인이 있으면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줄이고 줄이고 줄여 의인 10인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의인 10인이 있으면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서로 갈길을 갔다는 내용이다. 아브라함은 더 할 말이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도 더 하실 이야기가 없으셨을 것이다. 의인 10인이 없는 곳, 소돔과 고모라. 아브라함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소돔과 고모라인들에게 한스럽고 절망스럽지 않았을까? 그 이상 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함부로 멸하시거나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간청하는 아브라함, 그리고 예수님 역시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고자 노력한다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우시니 10인의 의인도 없는 소돔과 고모라는 그 결과가 멸망에 달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아브라함조차도 더 이상의 할 말을 하기 어려웠다. 10인의 의인도 없는 곳이라니.

 

아브라함의 심정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은 하나님의 길로,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길로 갔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이후는 소돔에 머물고 있는 롯을 구하러 두 천사가 들어가는 내용으로 이어지게 된다. 돌아선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후 더 이상 롯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아브라함 역시 롯과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롯이 살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아브라함과 멀어질 대로 멀어진 롯은 더 이상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으로 남아 지내게 되지 않았을까? 여러 생각이 든다.

 

과거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도 하나님은 심판권을 예수님에게 주셨다고 하셨다.(요 5:22) 하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한 것이 아니요,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말씀이 있다.(요 3:17) 이를 잘 아셨던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군병들에게 잡혀가는 중에도 큰 저항을 하지 않으시고 순순히 잡혀가셨다.(마 26:52~54) 예수님은 심판하실 수 있으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 모든 이들을 구원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모든 이들의 죄를 짊어지시고자 십자가를 지셨다.

 

무리를 해서 생각해본다면... 아브라함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2. 의인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21.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창 19:21, 개역한글 

 

소돔은 악행이 가득하였고, 천사들을 보고 대번에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아 이들을 범하고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다. 의인 롯은 대번에 천사들을 알아보고 자신의 처소로 불러 이들이 해를 입는 것을 면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하였으나 진정되지 않았고, 결국 천사가 나서 이들의 눈을 멀게 한 후에야 진정이 될 수 있었다. 

 

천사들은 롯에게 당장 이 성을 떠나라고 한다. 롯은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고하지만 사위들은 비웃을 뿐 따르지 않았다. 그와 아내와 딸들만이 급하게 성을 떠나게 된다. 천사들은 이들에게 산으로 도망하라 한다. 하지만 롯은 산이 내키지 않았는지 산이 아니라 근처 작은 성으로 가게 해달라고 한다. 이에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중에도 위와 같이 말한 것이다. 

 

결국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는 심판이 너무 커 작은 성에서 견디지 못하고 산으로 도망가게 된다. 하지만 천사들은 롯의 말에 저렇게 대답을 하였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이의 말에 천사들은 반응하는 것이다. 심판이 임박한 순간에도 말이다. 나중에 롯이 다시 산으로 도망하였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정말 인상적인 구절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우리의 작은 기도도 천사들이 하나님께 전해준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하나님은 누구와 함께 하실까? 의인이다. 노아에 대한 소개를 보더라도 노아는 의인이다라는 구절로 소개된다. 의인 노아는 누구도 믿지 않은 홍수심판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방주를 준비한다. 그리고 지상의 생물들을 짝을 맞춰 방주에 태웠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이, 그가 바로 의인인 것이다. 

 

그럼 오늘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그 뜻을 내가 지금 따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겠다. 그런 후 하나님께 기도드린다면 어떤 기도든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을까. 의인의 기도는 힘이 있다는 말씀이 생각난다.(약 5:16)

 

3. 나가는 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한 아브라함의 노력. 그리고 하나님 역시 사랑하는 만민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은 그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셨다. 어쩌면 아브라함의 마음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런 결말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또 노력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성경을 받게 되었고, 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눈물겨운 희생을 알게 되었다. 그럼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깨달아 하나님의 뜻에 다가가는 의인이 되고자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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