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성경] 2일 - 우리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창 6장 ~ 10장)

제시안 2024. 3.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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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글

 

세상이 참 흉흉하다. 유럽은 다시 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층간소음으로 이웃웬수가 되어 서로를 죽이기도 한다.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 어렸을 적만 해도 말이다.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 많은 사람들은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점점 더 세상은 안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성경을 펼쳐 읽다보니 몇몇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현재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마음이 심란하여 그랬으리라... 아쉽고 또 안타깝다. 우리 대에 와서 그 오랜 평화가 사라지고 다시 전쟁의 시기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그리고 그 모든 원인은 결국 사람의 욕심 때문이다.

 

1. 죄가 세상을 점령하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5, 개역한글

 

세상을 살다보면 악한 사람들, 자기 욕심만 가득한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히려 손해 보고 착하게 사는 내가 더 이상한 사람 같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나를 등쳐먹으려고 준비한 사람 같아 겁이 나고 그랬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원시공동체일수록 공동체에 의지해야만 생존률이 올라가서 선한 행위를 할수록 이득이라고 한다. 품앗이를 한다거나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것이 오히려 공동체에 필요한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원시공동체에선 자기만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거나 사기를 치는 것 등의 범죄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모르는 이들인 경우, 다시 만날지 어떨지 모르는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서로를 속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상업의 발달 역시 이런 속임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서로의 필요가 있었겠지만 각각의 가치를 상대방에게 속일 수 있었기에 거래가 시작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만약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필요한 물건을 요구한다면 그 요구에 대한 대가를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오히려 그냥 주거나 다음을 기약하며 선심을 베풀려고 노력한다. 공동체 내에선 거래나 물물교환은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세상이 원시공동체 수준을 넘어선 크기가 되어서 이렇게나 악해진 것일까? 아니면 돈이라는 도구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인간성을 잃어버려 이렇게 된 것일까? 어떤 것이 답인지 사실 알 길은 없다.

 

성경에서는 이런 세상의 악함을 하나님과 떨어진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은 선이시고 생명이시니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은 곧 선과 생명에서 멀어졌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세상은 하나님이 떠나가신 후 사단이 주관하기 시작했으니(눅 4:6) 사람들은 더 빠르게 악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 하셨다. 비록 아담의 죄로 세상이 사단에게 넘어갔지만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생을 구원하시고자 본격적으로 노력하시기 시작하셨다. 그 결과 예수님이 오셨다. 비록 다시 오신다 하고 떠나가셨지만 말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생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이런 노력들은 정말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발달할수록 악이 더 성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선함을 그리워하고 선함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다만 선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니(눅 18:19)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그 선함은 더 큰 힘을 발하고 더 분명한 향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까마귀와 비둘기

 

7.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 들이고
10.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놓으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줄 알았으며

창 8:7~11, 개역한글

 

아담 세계의 범죄를 끊기 위한 하나님의 결단. 그것은 대홍수였다. 노아를 통해 방주를 짓게 하시고 마침내 세상에 비를 쏟고 강이 넘치게 하셨으니 살아남은 이들은 노아의 가족들 외에 없었다. 하지만 죄는 끊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재밌는 것은 홍수가 났을 때 물이 빠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노아가 새를 내보냈다는 것이다. 처음에 내보낸 까마귀는 방주를 왔다 갔다 하고, 그 다음에 내보낸 비둘기는 앉을데를 찾지 못해 다시 방주로 돌아왔다고 한다. 날이 지난 후 다시 보낸 비둘기는 물이 빠진 증거를 가지고 와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단다.

 

배가 물 위에 있는데 세상에 물이 빠졌다는 것을 꼭 비둘기를 보내야 알 수 있었을까? 이 부분도 참 재밌는 부분이다. 물이 빠지면 어련히 빠진 것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포한 문장이 아닌가 싶다. 

 

까마귀는 큰 문제가 없이 왔다갔다 하는데 비둘기는 거둬들이고 다시 내어주고 하는 것 또한 재밌다. 까마귀가 마귀고 비둘기가 하나님의 새라면 세상을 덮고 있는 물은 하나님과 친한 물은 아니란 뜻이 아닐까 한다. 그럼 그 물이 빠지길 기다리는 기간이란 것은 대체 무엇일지. 생각하면 할수록 재밌지 않나 싶다. 물론 억지로 성경을 풀려고 하면 안 되지만 말이다.


그렇게 노아의 가족은 다시 정착할 땅을 찾고 자신의 세계를 펴고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함이 범죄를 하게 된다. 우리는 죄로 태어났고,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사단으로 인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죄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 과제가 되고 말았다. 

 

만약 예수님의 피로 우리 죄가 사해졌다고 한다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 가득한 악들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그들은 예수님의 피의 효력을 받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대체 무엇인가? 그들도 예수님의 피의 효력을 받지 못한 것인가? 그럼 교회라고 해서 예수님의 피가 있는 것은 아니란 소리가 되지 않은가?

 

질문이 많아지니 점점 어려워진다. 

 

 

 

3. 나가는 글

 

결국 우리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하지만 죄를 끊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참 어려운 문제다. 아담의 범죄로 멀어진 하나님. 하나님은 어떻든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노력하고 계신다. 성경을 보내주셨고,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으며, 예수님을 통해 다시 오신다는 약속까지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 예수님도 모르고, 약속도 모른다. 이것은 정말 문제이지 않은가? 알아야만 조금이라도 우리 죄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서로의 죄를 알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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