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성경] 3일 - 하나님은 누구와 약속을 했을까? (창 11장 ~ 15장)

제시안 2024. 3.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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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글

 

출근길 버스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항상 만원인 버스를 40분 넘게 타고 가야 도착하는 회사. 그래서 언제고 자리가 나면 냉큼 앉아서 내내 졸다 가기를 즐겨한다.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졸아야 남은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은지... 어떤 날은 노약자 석에 앉았는데 내리려고 일어나니 내 앞에 선 사람은 임산부였다. 임산부 패치를 백에 매달고 선 그녀를 보고 내심 미안했다. 아내도 임신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티가 나지 않아 사람들이 눈치를 주더라며 힘든 내색을 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속으로 얼마나 나를 욕하고 있었을까...

 

부끄러운 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 성경을 더듬어 읽으며 이렇게 저렇게 떠오르는 생각들에 잠겨보기도 한다. 만원 버스에서 있었던 일은 추억으로만 남으려나... 아니면 다음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노약자석은 피하고 보는 내가 될 것인가. 아마도 피로에 못 이겨 어디든 자리가 나면 냉큼 앉고 보겠지.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1. 소통이 어려운 시대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11:7~9, 개역한글

 

바벨탑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유치원 때였다. 유치원에선 기도도 가르쳐주고 밥을 먹기 전에 주기도문도 하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용한 양식"이라는 구절 때문에 밥 먹기 전에 주기도문을 했나 싶어서 웃음도 나온다. 아주 어린 시절이었으니 멋모르고 한 행동들이지만 어쩌면 이때 신심이 자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습게도 아빠와 엄마는 무신론자고, 교회는 나만 가라고 떠밀었다. 

 

평소 이야기를 좋아하던 나는 바벨탑 이야기를 그저 동화 속 이야기처럼 들었다. 그 이야기가 성경에 있었다는 것은 먼 훗날 첫 통독을 하고 나서 일이었다. 어렴풋 기억하고 있던 내용보다도 더 담담하게 기록된 그 내용을 보며, 각색이란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동화로 만난 신들은 다양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도 있고, 가장 많이 만난 것은 산신령과 옥황상제, 도깨비 같은 존재들이었다. 전래동화를 특히 좋아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종종 만났지만 변덕스러워 보였을 뿐 인자한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바벨탑에서도 하나님은 변덕스러워 보였다. 고작 건물을 높게 지으려고 했을 뿐인데 말을 다르게 만들다니!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했던 사람들의 교만을 보신 것이리라. 다시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 약속으로 그저 말을 다르게 해서 서로 뭉치지 못하게 만드셨을 뿐 더 책망하지 않으셨다. 기회를 엿보고 계셨던 것이다. 사람들을 다시 하나님의 곁으로 부르시기 위한 기회를 말이다. 

 

아직도 우리는 서로 대화하기 참 어렵다. 계속 오해가 쌓이고, 서로 다른 생각과 욕심과 감정으로 소통이 참 어려워지고 있다. 이로 인해 생긴 갈등들이 너무나 많고 이제는 그 갈등으로 끔찍한 재앙이 일어나려고 하고 있다. 이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젠 서로 말이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2.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것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창12:1~4, 개역한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자 노력한다. 하나님에게 택함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나님을 보고 천사들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물어보려고 몰려오고. 이런 것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택하신 이후 행적이 비교적 자세히 나타난 첫 사람이 아닐까 한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하란 땅에 있을 때 하나님이 택하셨다. 그때가 75세. 적지 않은 나이였다. 그는 그 나이에도 자신이 평생 살아온 고향을 떠나 어딘지 모를 하나님이 가라 하신 곳으로 정처 없이 나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가나안이었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될 그 땅에 아브라함이 머물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이후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 가뭄이 심해 애굽, 오늘날의 이집트에도 가야 했고, 매번 이방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 노심초사하며 살아가야 했다. 오죽하면 자기 아내 사라에게도 누가 묻거든 오라비라고 하라고 했을까. 얼마 남지 않은 혈육인 롯은 그와 싸워 헤어져 지내야 했고, 롯이 지내던 소돔은 불재앙을 받게 되었다. 불재앙을 받게 되는 그날 아브라함은 얼마나 하나님이 심판을 거두시길 바라고 또 바랬던가.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유성우에 사라지게 되었고, 다행히 천사의 도움으로 롯은 그곳을 벗어나 재앙은 받지 않았지만 아브라함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고대하던 아이는 너무 늙어서 얻게 되고, 첩을 통해 얻은 자녀와 갈등이 생겨 결국 첩의 자녀들은 내쫓아야 했다. 

 

덤덤하게 적혀있는 이 내용들을 보고 있노라면 고단하고 고단한 사람의 삶이 그려진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남편과 아들과 며느리, 손녀와 증손자를 모두 잃은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왔다. 아무런 감정 없이 다 갔어, 라고 말하는 그분의 모습 속에 세상의 고난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덤덤하게 가족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하나님이 택하신 아브라함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아버지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싸움의 시작이라고 해야 하나? 정말 하나님의 말씀처럼 아브라함의 씨는 온 세상에 퍼졌고, 지금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당시 아브라함의 삶은 과연 어떠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과 예수님과 악수하고 왔고 같이 낚시도 했다고 하는 이들처럼 호화로운 삶은 아니었던 것 같다. 

 

 

3. 약속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창15:13~16, 개역한글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약속을 받게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자손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자기 자손은 이방을 섬기고 400년 간 이방의 괴롭힘을 받게 된다. 그 후 하나님이 그 이방을 심판할 것인데 이때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이란 이야기다.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의 약속이니 그저 믿어야지 라는 생각이었을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기분 나빠하실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본격적으로 고달픈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이 이삭도 한참 뒤에야 태어나게 되니 말이다. 그때까지도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잊지 않았다. 이 약속은 이삭과 야곱을 넘어 애굽 땅에 들어간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계속 구전되어 전해졌다. 그 결과 모세가 이때가 그 약속의 때다, 라고 했을 때 모두 일어나서 애굽을 나가게 된 것이다.

 

어쩌면 당시 파라오에게 핍박받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이 약속이 큰 희망이고 소망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오늘날에도 훗날 이루어주신다는 천국의 소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처럼 말이다. 어쩌면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직접 해주신 이 약속이 고단했던 삶을 버티는 힘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한다. 

 

성경을 보면 구약과 신약이 있는 결과적으로 약속의 책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 약속을 믿는 사람, 약속대로 행하려는 사람, 이를 방해하려는 사람, 믿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는 사람 등 여러 군상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약속에 이르러서는 모든 아픔도 눈물도 고통도 없는 천국을 이루어주신다고 하셨다. 오늘의 우리는 바로 이 약속을 받은 사람이 아닐까 한다. 

 

이 약속을 받아 힘들고 어려운 삶을 근근이 버티며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것도 아닌데 성경에 기록된 이 약속들을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렵고 힘들고 고단한 삶을 끊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로 알고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그 가족들은 그 결과 모세를 따라 애굽을 나오고 이스라엘을 이루게 되었다. 

 

 

4. 나가는 글

 

이제껏 내가 살아가며 지키려고 노력하는 약속은 공과금과 카드값나가는 날짜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본래 약속을 잘 어기던 사람이었던지라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고, 지금에 와서도 종종 그런 습관이 남아있어 인간관계에서 곤란한 일을 겪은 적도 있었다. 부끄러운 일들이다. 이제는 자녀도 생겨서 그런 일들에서 벗어나고자 더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습관을 극복하는 것은 어려운 일. 그래서 더더욱 더 이상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들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조심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의 약속이라니.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한국인인 내가 그 약속과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 성경을 받았으면 약속을 한 것이란 뜻인지, 아니면 교회를 나가면 그런 것인지. 아니면 태어났기 때문에 약속을 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은 홍해의 기적으로 잘 알고 있는 모세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 옛날 신화와 같은 일들로 이루어진 이 일이 오늘날이라고 이루어지지 않으란 법은 없지 않은가? 하나님이 나와 직접 약속을 했든 안 했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한 복을 바라고 원한다면 약속을 알고 지키면 되지 않을까 한다.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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