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성경] 5일 - 하나님 약속을 믿는 믿음 (창 21장 ~ 25장)

제시안 2024. 3.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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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글

 

작년에 딸을 얻었다. 5년의 결혼생활 끝에 얻은 딸이라 귀하고 또 소중했다. 아이가 보채고 칭얼거리고 할 땐 더없이 화도 나고 그렇지만 웃는 모습을 볼 때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이것이 자식이 주는 행복인가 싶었다. 

 

군생활을 방공포대에서 했다. 방공포는 50년대에 만들어진 구닥다리였고, 진공관으로 겨우 움직이는 것이었다. 간부들은 우리가 방사능에 노출되었다며 나중에 자식을 못 낳거나 아니면 딸만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아이는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운 존재라서 차라리 낳지 못하는 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아이를 가져보지 못한 때와 달리 가져보고 나서야 느끼게 되는 감정이 다른 것은 사람이 자신이 체험한 것 이상의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아이를 낳고서야 아브라함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크기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짐작이 되었다. 

 

1.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다시 주시리라는 믿음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22:16-17, 개역한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얻은 자녀, 이삭. 그토록 원하던 자녀를 얻었으니 아브라함의 기쁨은 어떠했을까? 상상만 해도 흐뭇해진다. 5년 만에 얻은 자녀도 이토록 귀하고 소중한데 아브라함 100세에 정실부인인 사라에게서 얻은 자녀라고 한다면 그 기쁨은 말로 못할 것이다. 사라 역시 이삭으로 가지게 되는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자녀를 낳지 못해 가졌던 수모가 얼마나 컸을는지. 자신의 종이 이스마엘을 낳았다고 자기를 멸시하는 태도를 취한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 많은 설음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의 씨로 큰 나라를 이루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이삭을 얻게 되어 그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실로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하더니 이런 부분에서 진정 아브라함이 먼저 체험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여럿 자녀들이 있다 해도 정실부인에게 얻은 자녀는 이삭 하나니, 이삭에게 품는 애정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랄만한 이야기를 하신다. 

 

바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 

 

역시 성경에는 이때 아브라함의 심경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그가 무덤덤하게 이삭을 바칠 준비를 하고 이삭과 함께 단번에 길을 나서는 장면만 나온다. 오히려 불안함을 감지한 이삭의 질문 이후 문맥으로도 냉정하게 느껴지는 아브라함의 대답이 나오고서야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단호함.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함이 아브라함에게 자리하고 있던 것이다. 

 

100세 넘어 얻은 자녀니 하나님이 다시 주시리라는 믿음.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순간, 준비된 칼로 이삭을 치려는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막는다. 

 

하나님은 왜 이토록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려고 하셨던 것일까?

 

아담의 범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노아의 아들 함의 범죄로 가나안 세계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 저주를 받은 가나안 일족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달아보신 것이다. 복을 받을만한 자격을 갖췄는지. 

 

하나님의 입장과 달리 아브라함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저울질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고 굳건함을 보여드려야 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에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이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라고.(롬 4:18)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그가 이삭을 얻었으니 그다음 믿음은 얼마나 쉬운 것이었을까? 

 

하지만 경험을 해 본 바에 따르면 그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 11장에서 이미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 생각했다고 기록하여 전한 것이다.(히 11:17~19)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이미 하나님이 이삭을 네 자손이라 칭할 자이다 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그런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하시니 무언가 뜻이 있겠다 싶어 냉큼 내어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믿음을 과연 가질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브라함은 굳건히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 약속을 이루시는 가운데 있어지는 모든 일들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자식을 달라고 하시는 그 부름에도 응답한 것이다. 이런 믿음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아브라함의 믿음은 쉽지 않다는 평들을 받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믿음의 조상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2. 나가는 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작으로 비로소 히브리인, 이스라엘인, 유대인이라 하는 이들의 역사가 시작된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주리지 않고 살아남아 마침내 가나안을 쳐서 심판하는 그들. 지금은 옛 이스라엘 영토를 복원하겠다고 끔살을 벌이고 있는 그들.(그들 믿음의 근거는 과연 어디인가?) 그 오랜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이를 가지고 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행위에 대해서 계속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해서 나는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부디 그런 일이 없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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