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골 동네에서 사람이 계속 죽어간다. 최근에 이사 온 이방인 때문인가? 수상한 사람이다. 이방인을 두고 흉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딸이 귀신에 들렸다. 딸을 구하고 가족을 지켜야 한다. 용한 무당을 모셔왔다. 돼지를 잡고, 굿을 하는데 아이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 없다. 굿이 끝날 때까지 참아야 한다고 했는데… 약속했는데…
결국 굿을 파했다.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네 미친년이 있다. 사건 현장에서 기웃거리는 여자. 항상 소복을 입고 다니고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한 말을 던진다. 외지인이 귀신이라느니 덫을 놨다느니… 이 여자, 믿을 수 있을까?
과연 이 상황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1. 외지인 / 일광 / 무명, 그리고 전종구
미끼를 물었다
시골의 조그만 마을. 파출소 경찰 전종구는 비 오는 날 살인사건 현장에 출동한다. 그렇게 영화는 시작한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남아있는 정겨운 마을. 한 사람의 상실도 모두에게 걱정이 된다. 전종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한 사람이 자꾸 거슬린다.
최근에 마을로 이사를 왔다는 외지인.
일본인이라는 그의 행적은 늘 묘하다. 때때로 꿈에서 괴물로 등장하기도 하는 그에게 점점 더 관심이 간다.
사망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대체로 한 사람이 미쳐서 가족 모두를 몰살시키고 자살까지 한다. 버섯을 잘못 먹고 그런다는 이야기도 있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외지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었다. 외지인 집에 방문한 전종구. 그곳에서 묘한 것들을 발견했지만 텃세만 부리고, 실수만 하고 만다.
그래서일까.
딸이 미치기 시작했다. 귀신이 들린 것 같다. 용한 무당을 찾아간 그는 이제 경찰이 아니라 아버지. 무당 일광은 즉시 전종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의 조언에 따라 두 차례나 굿을 하지만… 생각보다 고통스러워하는 딸의 모습에 참지 못한다. 아무리 딸을 위한다지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전종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일까.
허무하게 굿판을 엎어버리고 결국 발길이 닿은 곳은 성당. 도움을 요청했지만 일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놓고 싶은 그 순간 미친년처럼 다니던 무명이 등장한다. 사건 현장마다 모습을 드러냈던 그녀.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만 알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다르다.
내가 함정을 팠어.
무영을 만나기 전 일광의 전화를 받은 전종구. 일광은 무명이 다 꾸민 짓이라고 속인다. 이젠 더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전종구. 결국 그는 무명의 말을 지키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비극적인 최후가 기다리는 곳으로 말이다.
2. 모르기 때문에 생긴 비극
영화 내내 비극을 가져다주는 존재는 “외지인”이다. 그는 악마다. 이 악마를 아는 존재는 둘이 있다. 일광과 무영이다. 안타깝게도 전종구는 이 사실을 모른다.
이것이 영화 내내 이야기를 끌어가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우리도 종종 이런 경우들을 만난다. 실제 [사도행전 16장]에는 재밌는 일화가 하나 실려있다.
바울이 선교 여행을 다니는 중이었다. 한 귀신 들린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 여자는 종이었고 주인은 그 여자를 통해 점을 봐주고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바울만 보면 쫓아와서 외치는 거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루도 아니고, 며칠을 이 여자가 소리를 지르니 바울이 마침내 지치고 만다. 결국 종에게 붙은 귀신을 쫓아내기에 이른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이 여자를 통해 이득을 보고 있던 주인이 바울을 고소한 것이다. 짓지도 않은 온갖 죄를 뒤집어 씌워 감옥에 가두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무사히 풀려나게 된다.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두 가지다. 먼저는 악령의 태도다. 그 악령은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자기가 들어간 여자를 통해 이 정체를 밝힌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악령이 떠나 더 이상 점칠 수 없는 여자로 손해를 본 것만 생각한다.
바울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구원의 길을 전한다고 하지만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는 바울이 이 도시에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성경에서는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알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특히 구약에서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는 말씀을 하시고(호 4:6) 신약에서 예수님은 영생을 얻기 위해 늘 성경을 생각하지만 정작 성경대로 오신 예수님에게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며 한탄하신다.(요 5:39~40)
[곡성]에서 전종구가 일광의 말을 더 들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광의 배경이다. 무영의 설득을 뒤집을 수 있는 일광의 직업, 굿, 이런 것들 때문이다. 물론 일광이 집요하게 설득한 것도 한몫을 했다. 그렇지만 결국 모든 책임은 일광에게도 무영에게도 있지 않다. 오직 전종구가 어떤 판단을 했냐는 것에 책임이 있다.
마치 사도 바울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증거 한 귀신처럼. 일광만이 무영을 만났을 때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전종구는 없었다.
그러면 전종구는 어떻게 했어야 했나? 무영을 믿을 수도, 일광을 믿을수도 없는 상황에서. 전종구는 어떻게 이들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을까?
3. 사도 요한의 충고
영적인 깨달음이 깊었던 사도 요한. 그가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남긴 서신서에 이상한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영을 시험하라는 것. 거짓 선지자가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요일 4:1)
그럼 영을 시험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예수님께선 거짓 선지자에 대해 명료하게 구분해 주신다. 그것은 그 사람의 말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시고, 거짓 선지자는 거짓말, 제 것을 말한다는 것.(요 8:44~45)
전종구에게 다가오던 이들은 누구 하나 진리를 말하지 않았다. 그저 믿으라는 말만 했다. 아니면 자신의 지위를 이용했다. 모두 낯선 존재에 당황했고, 지켜보거나, 함정을 파거나, 아니면 그에게 빌붙었다.
전종구에겐 일련의 사건들이 그저 사람이 벌인 짓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일들은 영의 역사였다. 외지인은 악마였다. 일광은 악마에게 빌붙었고, 무영은 악마의 행위를 다 본 자다. 문제의 전종구는 어쩌다 보니 정면에서 악마와 싸우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았든 말이다.
악몽을 꾼 것도, 외지인을 수사해야 했던 것도, 그와 갈등이 생긴 것도, 굿을 한 것도 모두. 어쩌다보니 외지인과 엮이게 된 것일 뿐. 그를 저격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외지인, 악마를 자극했고 그 악마는 전종구의 가족도 몰살시키기로 작정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비참한 최후로 나아가는 발걸음.
만약 전종구가 진리로 이들을 구분할 줄 알았다면 이런 비극을 맞이했을까?
4. 맺는말
거짓말로 우리를 현혹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에서 우리는 늘 고민한다. 저 자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항상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영과 관련된 문제다. 저 자가 악마인지 선인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실제 바울은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는 경고를 남겼다.(고후 11:13~14) 이런 경우에 우리는 사단인지 광명의 천사인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이 보이지 않기에 모르는 일로 치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전종구도 그런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어쩌면 그의 가정에 불어닥친 비극은 준비되지 않고 그저 하루 삶에 치이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섬뜩한 경고를 전한 것인지도 모른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마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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