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보고, 생각하고

번역된 책들에 대한 고민

제시안 2024. 8. 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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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글

최근에 보고 있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의 번역 수준이 너무나 처참하다. 보는 내내 짜증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무슨 내용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앞부분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이것은 번역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출판사의 역량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내용은 현시대 초유의 관심사를 다룬 내용이라서 굉장한 인사이트를 제공해 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우리는 종종 번역된 글들을 만나게 된다. 책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 등등 여러 분야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 번역이라는 것은 그저 영어를 한글로 전환하는 작업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번역이 쉬웠다면 AI의 발전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어를 바꿀 뿐만 아니라 문맥과 언어 관습, 그리고 문화까지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관습, 그리고 서로 다른 문맥을 적용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번역가들이 힘들어하는 것이고 오랜 노하우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에 읽고 있는 책을 보면 그런 고민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저렇게 보고 마는 책이었다면 크게 화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문학작품이었다면 그럴 수 있겠거니 이해했을 것이다. 워낙에 문학작품의 경우 그 속에 있는 문화나 속뜻까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해석하기 어려운 글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서고, 세계적 상황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그러면 적어도 그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 써야 맞을 것이다.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 전혀 분야가 다른 사람이 책을 번역하고, 출판사는 이것을 검수도 하지 않고 그냥 통과시킨 느낌. 허... 정말 끔찍하다. 너무나 화가 나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1. 인문 서적의 번역이 중요한 이유

학교를 다니며 느끼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한국과 유럽, 미국의 지식 수준 격차이다. 오늘날이야 온라인상으로 워낙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학교를 다닐 때는 아직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이제 조금씩 온라인상으로 여러 정보들이 교류하던 때라고 할까나? 그것도 영어를 수준급으로 할 줄 알 때 이야기지 나처럼 영어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라면 그조차도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인문서들을 보통 보다 보면 책의 출판연도도 보게 된다. 이 책을 처음 출간한 시점이 언젠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책들을 보다가 공통된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보통 5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어 들어온다는 점이다. 이것을 보고 굉장히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을 하고 공부를 해도 한국어로 번역된 책만 봐서는 5년이라는 시간차를 줄일 수 없는 것이다. 이 5년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큰 시간으로, 미국만 하더라도 대통령이 바뀌는 시간이다. 정책과 정부의 방향성,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결국 한국에 들어오는 인문서들은 개괄적인 사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들이 많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그러면 이 5년을 따라잡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것은 원서를 보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아마존의 킨들을 통해 해외 서적들을 구매해 읽지 않는다면 이 5년은 따라잡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도 이전 이야기가 되었다. 요즘은 워낙 정보가 열려있고, 교류가 많아서 이 5년이란 시간을 두고 책을 출간하면 이미 책 자체를 팔기 어려운 시점이 되었다.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서점이 온라인으로 존재하고, 거기에 전 세계 배송이 가능하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책뿐만 아니라 세계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까지 포착 가능하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당대의 인사이트를 정리한 책이 발간되었다? 이것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하다. 이미 사람들의 관심이 떠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내가 보는 이 책은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발간한 것이다. 미국에서 2023년 9월에 발간된 책인데 한국에는 2024년 7월에 발간되었으니 말이다. 5년은 커녕 1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책이 발간되었다. 실제로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제정세에 대한 학자의 고견이 기록되어 있다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본 바 굉장한 인사이트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우리가 보통 알고는 있었지만 놓쳤던 사실들을 발견하게 해 주고, 그 사실들을 통해 새로운 고찰을 끌어내는 것까지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책이 제대로 번역이 되었다면 그 자체로도 훌륭한 역서가 될 수 있다 장담한다. 하지만 이 책은 번역이 정말이지 개판이 났다. 그래서 현재 책 중간까지 읽었는데 책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은 것이 굉장히 참담할 정도로 적어지고 있다. 이유는 대체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는 문장들이 꾸준히 지속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악몽을 선사해주는 책이 되었다. 이러면 이 책의 존재가치는 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차라리 번역본을 보지 말고 원서를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참담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는 것을 실패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우리는 새롭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한 노학자의 놀라운 고찰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 작은 실패다. 이 실패로 인해 우리 사회가 또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2. 번역은 그저 기술적인 역량이 아니다

어린 시절에 본 책 중에서 문학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 씨가 번역한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룬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를 생생하게 감상했다. 번역된 문장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려한 문체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명문장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쉽고, 정확하고, 전혀 낯설지 않은 문장들로만 이루어져 있었으며 명쾌했다. 그가 왜 훌륭한 번역가라고 이야기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렸을 적에야 번역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이란 책을 통해서 번역이 안 좋으면 이런 책이 나오는구나 하는 것을 처음 느끼기 전까지 말이다. 이 책 역시 워낙에 번역이 엉망이 되어서 책 전체의 맥락을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렇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체가 워낙 문학적인 기교가 많은 책이어서 그러려니 했다. 실제로 포스트 모더니즘에 유행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쓴 저작이라 소개되고 있으니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나중에 안 것이고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구나 정도로 그쳤다.

 

지금 보고 있는 책의 번역이 엉망이라고 하는 이유는 한국어의 정서가 완전히 무시된 문장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장들이 그저 영어를 한국어로 단순하게 치환시킨 정도에 불과한 문장들로 나열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기원후 600년에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하는 문장이 나온 후 최근에 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문장이 나왔다. 이 최근이라는 말은 보통 현대를 시점으로 가장 가까운 시간 내에 있었던 시기를 이야기하는 단어가 아니던가? 영어의 "Recently"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닐까? 그럼 최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혹은 그 당시라던가 여러 단어가 있을 텐데 그것들은 고려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번역가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 아닐까?

 

영어를 그대로 1:1 치환시키는 것이 번역이라고 한다면... 그걸 봐야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보지 않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차라리 원서를 보는 것이 나을 것이고, 쳇 GTP에게 번역을 요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적어도 독자가 봤을 때 내용이 쉽게 이해되고, 명료하게 파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아무리 번역을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먼저는 번역가가 번역할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이 풍부해야 한다. 이 책을 보더라도 번역가는 로마사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사람이라는 티가 난다. 보통 로마시대에 대해 이야기할 때 통용되는 단어들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적어도 집정관이라는 단어는 나와줘야 하는데 공동 대표라든지, 부왕이라든지 이런 새로운 말들이 넘쳐난다. 이것은 그 시대에 정통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적어도 관심정도는 있어야 했을 텐데 그것도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겠고, 단어를 풍부하게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전에 학교를 다닐 때 한 강사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문예창작학과와 국문학과의 차이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때 그 강사님이 이런 대답을 해줬다. 문예창작학과의 장점은 단어의 결을 읽어낸다는 것이다. 이 단어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어떤 결을 가지고 있는지 예리하게 파악하는 것이 문창과라고 했다. 국문과는 그런 재능까지는 없다고 이야기해줬다. 한국어를 다루는 두 학과에서도 서로 다른 특징이 나타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한 학과는 한국어로 창작을 하는 곳이고, 한 학과는 한국어를 연구하는 학과라서 그런 것 아닐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번역가가 그만한 자지를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래도록 문학작품을 보고 창작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역량에 다가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보통의 한국사람들이 쓰는 한국어 습관에는 다가갈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단어에 대한 이해다. 단어는 그냥 쓰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밥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도 그저 밥이라고 할 때가 있고, 식사라고 이야기 할 때가 있고, 아침이나 점심, 저녁이라고 이야기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 그저 내키는 대로 이야기한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밥이라고 말하는 경우들, 식사라고 하는 경우들, 아침이나 점심, 저녁이라고 하는 경우들은 서로 다 다르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고민하고 생각해 본다면 바로 포착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이것을 모른다면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체 어떤 번역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3. 나가는 글

필자도 영어공부를 하면서 원서도 읽고, 양서는 번역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오래도록 원서를 읽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라 이번 영어공부는 그치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리고 전에도 일을 하면서 간간이 번역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때 아주 곤욕을 치르곤 했었다. 문법도 잘 모르고 단어도 잘 모르니 번역기에 의지하게 되는데 번역기마다 번역이 달라서 어떤 해석이 맞는지 고민하곤 했기 때문이다. 또 필자가 듣기에도 화자가 다른 단어를 말하는데 스크립트에는 전혀 다른 말이 적혀있어서 필자가 들은 것이 맞는지 고민하던 적도 있다. 이런 여러 경험들이 쌓여서 결국 영어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짧은 경험들을 통해서도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하였다. 국제법에 대한 내용을 보게 되었을 때도 굉장히 많은 부분들이 해석하기 어려웠다. 상대는 배경지식이 있고, 국제법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할 때 당연하게 이야기되는, 통용되는 언어들을 그냥 쓰는데 필자에게는 전혀 생소한 이야기들이라서 당황한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 인터넷을 계속 찾아보고 공부한 결과 이들의 말을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말을 다시 한국어로 옮겨적으려고 하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영어 문장에 길들여져서 한국어 문장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걸 보면서 번역이란 것이 참 쉽지 않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쓴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최소한 문장들을 검수하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은 이 책을 심지어 1만원 이상의 돈을 주고 사서 보게 했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럽다. 이런 출판사의 태도가 참... 어처구니없을 정도였다. 그런 생각에 쓴 글이다.

 

점점 더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빠른데 이 속도에 맞춰 출판계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디 이 속도에 점복되어 출판의 본질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양질의 도서가 계속 출판되어 한국의 문화가 풍부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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